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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길, 100년 넘은 성당… 근대로 떠나는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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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역사현장 걸어요”

[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10> 대구 근대문화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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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대구 근대골목 2코스 뽕나무골목에 설치된 '하루 천냥' 엽전 조형물 앞에서 옛 고교생 모자를 쓰고 놀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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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들이 청사초롱을 들고 대구 근대골목 2코스 3ㆍ1 만세운동길 계단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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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골목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문화가족팀이 근대골목 2코스 3ㆍ1만세운동길을 걷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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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2시 대구 중구 동산동 청라언덕. 대구 근대문화골목 시작점인 동산 선교사 주택 주변은 쌀쌀한 겨울바람에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 골목은 근대골목투어 2코스다.

청라는 푸른 담쟁이를 말한다. 100여년 전 이곳에 푸른 담쟁이가 가득해 청라언덕으로 불렀다. 대구 지역 의료 선교사들이 심은 담쟁이 언덕에는 당시 선교사들이 살았던 서양식 주택 3채가 남아 있다. 집 이름도 선교사들의 이름을 따 스윗즈 주택,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으로 지었다.

대구시 유명문화재 24호로 지정된 스윗지 주택은 1999년부터 선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챔니스 주택은 드라마 ‘각시탈’에서 박기웅(기무라 슌지 역)의 자취집, 드라마 ‘사랑비’에서 윤아(김윤희 역)가 입원했던 장소로 눈에 익숙하다. 2002년 보수작업을 거친 이곳은 의료박물관으로 탈바꿈해 1890년대~1900년대 사용된 의료기기를 선보이고 있다.

블레어 주택은 동산에 세워진 최초의 선교사 주택으로, 당시 미국 주택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2001년 근대 교육 발전사를 살펴 볼 수 있는 교육역사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고, 2003년엔 3층에 3‧1운동 전시관이 들어섰다.

청라언덕은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불러 봤을 ‘동무생각’ 노랫말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대구가 낳은 근대음악의 선구자 박태준 선생이 계성학교를 다니던 학창시절 로맨스를 담은 곡으로, 시인 이은상 선생이 박 선생의 연애사를 듣고 쓴 시에 다시 곡을 붙인 가곡이다.

김명자(57ㆍ대구 수성구)씨는 “부산에서 놀러온 친구들과 어디를 가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역사까지 함께 느낄 근대골목이 좋을 것 같아 왔다”며 “친구들이 대구에 이런 곳이 있을 줄 몰랐다며 좋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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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오른쪽) 중구골목문화해설사가 10일 대구 근대골목 2코스 김원일의 마당깊은집에서 방문객에게 소설 배경과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희정 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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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골목 2코스 이상화 고택 전경. 대구 중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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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들이 10일 대구 근대골목 2코스 이상화 고택을 둘러보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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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모든 곳이 근대 역사 현장

대구 근대골목투어는 경상감영달성길, 근대문화골목, 패션한방길, 삼덕봉산문화길, 남산100년향수길 등 5개 코스로 운영된다. 그 중 2코스 근대문화골목은 대구 근대사를 보여주는 역사문화 코스로, 10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관광객도 가장 많이 찾는다.

청라언덕 동산선교사주택을 시작으로 3ㆍ1 만세운동길~계산성당~이상화ㆍ서상돈 고택~약령시~진골목~화교소학교를 경유하는 1.64㎞ 코스다.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무방하지만 시작점인 청라언덕에서 코스를 따라 걷는 게 일반적이다.

청라언덕 동무생각 노래비를 따라 시내 방면으로 내려가면 3ㆍ1 만세운동길이 펼쳐진다. 계성학교, 신명학교, 성서학당, 대구고보 학생들이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3ㆍ1운동 집결지인 큰장터로 가기 위해 지나 다녔던 솔밭길이다. 계단 옆 벽면을 따라 1900년대 초 대구 사진과 3ㆍ1운동 당시 모습들이 전시돼 있다.

최재수(35ㆍ울산 남구)씨는 “총 90계단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시절 이 길을 다니던 학생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한 계단 한 계단 걸어봤다”며 “3ㆍ1운동 장면을 보며 걸을 수 있어 그 시절의 아픔을 잠시나마 느껴볼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3ㆍ1 만세운동길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100년 넘는 역사에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계산성당을 만날 수 있다. 1899년 로베르 신부에 의해 한옥으로 지어졌지만, 1901년 화재로 불타면서 이듬해 포와넬 신부가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이곳은 아름다운 설계와 전통 덕에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당과 인연이 깊은 나무도 만나볼 수 있다. 계산성당과 계산문화원 사이 등나무 벤치에 있는 감나무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후까지 활동한 대구 출신의 천재화가 이인성의 작품 ‘계산동성당’ 속에 계산성당과 함께 등장해 이인성 나무로 불리고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저항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국권회복을 꿈꾼 민족운동가 서상돈 고택을 만나볼 수 있다. 이상화 고택은 개발로 허물어질 뻔 했지만 시민들의 도움으로 철거를 면했다. 맞은 편에는 구한말의 장사꾼이자 청렴한 선비, 교육가로 산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 있다. 만석꾼이란 말이 민망할 정도로 소박한 집이다. 청빈한 삶을 짐작할 만 하다.

이어 조선시대 효종9년(1658년)부터 이어온 전국 3대 한약재 전문시장인 ‘대구약령시’와 길다의 경상도 사투리 질다에서 기원한 ‘진골목’, 80년이 넘었지만 보존상태가 좋아 근대건축물 등록문화재 제252호인 ‘대구화교협회(소학교)’를 차례대로 둘러보면 어느새 근대 시간여행이 마무리된다.

김정자(56) 중구골목문화해설사는 “골목골목 숨겨진 콘텐츠들을 원하는 대로 골라 걸으며 보는 매력에 서울 부산 울산 전주 등 전국에서 사람이 몰리고 외국인 관광객도 크게 느는 추세”라며 “2020년 대구ㆍ경북 관광의 해를 맞아 관광객이 더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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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골목 2코스인 근대문화골목 지도. 대구 중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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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골목 2코스 계산성당 야경. 대구 중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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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공동화로 죽어가던 골목이 역사ㆍ문화 이야기 입으며 부활

대구 중구는 10여년전 만 해도 여느 대도시 중심구와 마찬가지로 인구감소에 따른 도심공동화로 골머리를 앓았다. 외곽으로 부도심이 개발되면서 이 현상은 악화됐다. 중구도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도심 전역이 재개발, 재건축,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됐다. 중구가 주목한 것은 단순 개발이 아니었다. 대구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유ㆍ무형의 역사적 문화재산을 살리는 개발이었다.

대구도심은 6ㆍ25전쟁의 포화를 비켜간 곳이다.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골목이 저마다의 역사, 문화,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중구는 이곳을 ‘근대골목’이라 부르고 스토리를 살렸다. 2007년 골목투어 2코스인 근대문화골목에 근대문화공간 디자인개선사업을 시작으로 동성로공공디자인 개선사업, 특화거리 조성사업, 전통문화거리 조성사업, 근대골목관광활성화사업 등 문화와 도시재생을 접목한 다양한 사업이 이어졌다. 발길이 끊어졌던 골목들이 도심관광 상품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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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골목 2코스 문학체험관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입구 전경.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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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골목 2코스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앞에 설치된 스탬프.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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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문화해설사ㆍ체험프로그램과 함께 더욱 알찬 골목투어

근대골목은 언제든 지도 및 스마트폰 앱 ‘골목투어’를 활용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지만 골목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해도 좋다. 72명의 골목문화해설사들이 여행객의 연령과 직업, 종교 등을 고려해 맞춤형 해설을 선보인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는 정기 투어, 매주 금요일에는 청사초롱을 들고 해설사와 함께 문화재야경을 감상하는 청사초롱 야경투어가 여행객을 반긴다.

15명 이상 단체 관광객은 아무 때나 해설사와 동행할 수 있다. 사전에 희망 시간과 코스를 신청하면 된다. 이곳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영어, 일어, 중국어 해설사와 시각장애인ㆍ수어 해설사도 활동중이다. 근대골목은 2015년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장애인, 어르신, 영유아 동반 가족 등 모든 관광객들이 제약없이 즐길 수 있는 무장애 열린관광지로 인증받았다.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와 약령시한의약박물관에서 한복 체험과 느린우체통, 한방족욕체험, 가죽공예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관광객들이 근대골목 주요 관광지에 비치된 스탬프를 찍어 오면 중구 내 지정된 카페와 식당, 떡집 제품, 숙박 문화시설에서 가격을 깎아준다.

홍희경(52) 중구골목문화해설사 사무국장은 “주요 관광지에 비치된 스탬프를 찍으며 즐기는 골목투어는 가족단위 관광객에게 인기 만점”이라며 “스탬프를 찍으며 자유롭게 여행을 하다 골목문화해설사로부터 숨겨진 골목 이야기를 들으면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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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골목 2코스 진골목 전경. 길다의 경상도 사투리 '질다'에서 기원한 이름으로, 골목 전체 길이는 100미터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사라져가는 전통다방의 원형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미도다방'과 1937년 민간 자본으로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주택인 갑부 서병직의 주택을 1947년 정필수 원장이 매입해 만든 정소아과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대구 중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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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관광객이 10일 대구 근대골목 2코스 약령시한의학박물관 앞에 설치된 한방족욕체험장을 살펴보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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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속 관광객 200만명 돌파… 새로운 콘텐츠 강화로 재방문 유도

대구 근대골목은 2012년 ‘한국관광의 별’, 2013년 ‘지역브랜드 대상’, 2013~2019년 ‘한국관광 100선’에 4년 연속 선정됐다. 관광불모지로 꼽히던 대구가 관광도시 반열에 오르는데 톡톡히 역할을 했다. 도심공동화로 퇴락하던 거리는 새로운 상권으로 되살아났다.

관광객 수가 그 증거다. 중구는 근대골목과 향촌문화관,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등 근대골목 투어를 찾은 관광객이 최근 3년 연속 2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집계가 시작된 2008년 287명을 기록했지만, 2017년 207만5,847명으로 첫 200만명을 돌파했다. 이어 2018년(222만1,562명), 2019년(234만3,073명)을 거치며 최다 관광객 수를 3년 연속 갈아치웠다.

류규하 중구청장은 “대구 도심의 각종 재생사업에 발맞춰 새로운 스토리텔링과 테마투어코스를 개발하고 관광인력을 전문ㆍ고급화하겠다”며 “앞으로는 민간이 동참하는 근대골목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윤희정 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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