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8 (일)

[정동길 옆 사진관]서소문의 성스러운 공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지하1층 입구에 전시된 ‘순교 십자가’ 조각상 앞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시체들이 출입하던 문이 있다. 조선왕조의 수도 한양은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한양도성을 축조했다.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높이 5~8m, 길이 18.6km의 한양도성이다. 도성의 출입은 흥인지문(동대문), 숭례문(남대문), 돈의문(서대문), 숙정문(북대문)의 4대문과 창의문(북소문), 혜화문(동소문), 광희문(남소문), 소의문(서소문) 4소문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중 광희문과 소의문은 도성 안의 시체가 반출돼 ‘시구문(屍口門)’이라 했다.

경향신문

지하1층 입구에 전시된 ‘어느 난민 복서를 향한 시선’ / 김창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쪽의 시구문인 서소문에는 사형집행장이 있었다.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이었고, 망나니가 사람을 죽일 때 칼을 씻던 ‘두께우물’도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정치적 종교적 박해를 받은 인물들이 처형됐다. 동학농민의 지도자들, 구한말 서소문 전투의 군인들, 사회개혁 세력들, 천주교인들. 그러나 이곳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천주교인들을 제외하면 별로 없다. 서소문고가, 염천교, 경의선철길 등 외딴섬처럼 고립돼 노숙자들만이 찾는 서소문 공원으로 이용되다 지난 해 6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포함한 서소문역사공원으로 개방됐다.

경향신문

하늘 광장에 전시된 장현 작가의 ‘서있는 사람들’ / 김창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소문역사공원의 지상은 순교자현양비를 제외한다면 종교적 색채가 없는 평범한 도심 근린공원이라 볼 수 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천주교 성지의 분위기가 강하다. 상설전시장은 천주교 박해의 기록물들과 전시물이 대부분이고 2층의 성 정하사 기념경당은 천주교 성당 내부를 닮았다. 위로의 공간인 콘솔레이션홀(consolation hall)은 박해당해 순교당한 이들의 추모 공간이다.

경향신문

지하3층 상설전시장의 관람객들 / 김창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지하 3층 상설전시관에 전시된 최지만 작가의 ‘순교자의 무덤’ / 김창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지하 3층 콘솔레이션홀에 마련된 천주교 순교자 5인의 유해함 부조 / 김창길 기자


공공의 예산을 들여 특정 종교 색채가 강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거부감이 강한 것은 아니다. 도심 한 복판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신성하고 명상적인 공간에 들어섰다는 의외의 놀라움과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공간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지하 성당, 지하 묘지, 박물관, 미술관이 섞여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모호한 공간이라는 비판도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