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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도자 조각 기둥…내 꿈 파편을 쌓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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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도자 설치 작품 `무제` 사이에 서 있는 백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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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도자 파편들을 차곡차곡 쌓은 기둥들이 조명을 받아 오묘하게 빛난다. 깨진 도자가 아니라 종이처럼 얇은 조각 수만 개를 가마에 구워 서로 90도 직각을 이루게 만들었다.

서울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개인전 '파편'에서 만난 백진 도자 설치 작가(50)는 "내 꿈의 파편을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꿈을 많이 꾸는데 어느 부분만 기억난다. 행동이나 생각 과정이 잔상으로 남아 있다. 꿈도 내 일부라 기억하기 위해 작업으로 남긴다. 구체적 형태나 색깔이 아니어도 꿈을 남기고 싶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편이 굉장히 얇다. 흙덩이가 아니라 흙물을 구웠기 때문이다. 흙가루와 물을 섞어 석고판에 넣으면 약간 굳어 얇은 흙판이 생긴다. 이를 자르거나 구부려 700~800도 전기 가마에 넣어 초벌한다. 재벌은 용도에 따라 1100~1260도 전기 가마에서 4~7번 굽는다. 신중을 기해도 손실률이 50%에 달한다. 작가는 "흙은 가마에 들어가는 순간에 휘거나 깨지는 게 절반"이라고 말했다.

파편으로 기둥을 만드는데 엄격한 규칙이 있다. 그가 정한 각도와 방향에 맞춰 퍼즐을 맞추듯 쌓는다.

"비정형 도자 조각을 나만의 정형 규칙으로 배열한다. 하나하나 내 손이 닿아야 만족할 수 있다. 재조립에 몰두하는 시간이 좋다. 물론 젖은 흙을 만지는 것도 편하다."

그는 색깔을 쓰지 않는다. 흰색 도자 조각을 고집한다. 바로 빛 때문이다. 백 작가는 "그림자가 내 작품의 중요한 요소라 빛이 절대적이다. 흰색이 그림자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3년부터 흙의 다양한 물성을 보여주기 위해 전통 도자 방식에서 벗어난 도자 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물결치거나 둥글게 말려 있는 조각을 평면에 붙인 작품 등 도자의 한계를 넘어서왔다. 서울 여의도 IFC몰 로비 천장에 과자칩처럼 수없이 매달려 있는 하얀 도자 파편도 그의 작품이다.

그릇을 만들 때 유약을 칠한 뒤 생기는 기포를 못 참아 새로운 작업 방식을 고민한 그의 완벽주의가 도자 작업의 원동력이다. 작가는 "전생에 업이 많아 노동집약적 작업을 한다. 일종의 정신 수행이자 명상이다. 17년간 작업을 하면서 모난 성격이 부드러워졌다.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앞으로도 수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도예과를 졸업한 백 작가는 상하이 웨스트 번드 아트&디자인 페어(2017), 프랑스 발로리스 국제도자비엔날레(2016), 서울미술관(2014),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2013), 파리 라틀리에(2013) 등 주요 그룹전에 참여해왔다. 2018년 중국 상하이 스와치 피스 호텔 아티스트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됐으며 수코타이 상하이 호텔, 전경련회관, 한국도자재단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3월 8일까지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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