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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푸틴 종신집권 위해 개헌 드라이브…대통령 힘빼 실세총리 `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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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차기 총리로 지명된 미하일 미슈스틴 연방국세청장과 1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타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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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종신 집권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러시아 정치 체제를 본격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이끄는 러시아 내각은 푸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15일(현지시간) 총사퇴를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신년 국정연설에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의회 권한은 강화하는 내용으로 부분 개헌을 제안했다고 러시아 타스통신 등이 보도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이 헌법을 개정해 3연임이 가능하도록 시도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국내외에서 3연임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푸틴 대통령이 전략을 바꾼 것 같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이날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같은 인물이 두 차례 이상 연이어 대통령직을 맡아선 안 된다는 헌법 조항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3연임은 금지돼 있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2000~2008년 4년 임기 대통령직을 연임한 뒤 잠시 총리로 물러나며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총리 임기 중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한 그는 2012년 대선에서 대통령직에 복귀한 뒤 2018년 대선에서 또다시 당선돼 4기 집권에 성공했다.

부분 개헌안 핵심은 대통령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부분 개헌안에 따르면 대통령은 총 2회만 연임할 수 있다. 기존 대통령 권한이었던 총리 지명과 내각 선출 권한은 하원으로 이양한다. 대통령 자격을 갖추려면 25년 이상 러시아에서 거주해야 하며, 외국 여권이나 거주 허가를 받은 적이 없어야 한다. 이 같은 조항은 푸틴 대통령이 자신 외에 또 다른 장기 집권 대통령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된다. 자신의 권위주의적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보다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인사가 해외에서 갑자기 러시아 정치에 등장하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의회 권한을 강화하는 것 또한 장기 집권을 위한 푸틴 대통령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부분 개헌안은 하원에 정부 개입 권한을 주는 동시에, 상원에는 법원과 경찰의 인사 결정권을 부여한다. 푸틴 대통령이 퇴임 후 의회를 장악하면 막강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위원회 권한도 강화한다. 하원 의원과 전국 주지사로 구성된 국가위원회는 현재 역할이 크지 않은데, 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의회 외에도 국가안보회의를 통해 영향력을 더 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 대통령이 의회를 장악해 두 번째로 총리가 되거나, 국가위원회 수장을 맡아 권력을 장악하는 두 가지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위원회 수장을 맡는 방안을 선택하면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쓴 시나리오를 모델로 삼을 거라고 FT는 전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29년간 장기 집권 후 지난해 3월 퇴임했지만 현재 새로 만든 '인민의 지도자' 자리를 차지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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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치 자문단체인 정치기술센터(CPT)의 알렉세이 마카르킨 부소장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 "푸틴 대통령은 현재 러시아 체제 설립자이며 통제력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며 "부분 개헌안은 2024년 푸틴 대통령 퇴임 이후 권력 장악을 위한 계획이며, 푸틴 대통령이 후임으로 누구를 지목할지 덜 주목받게 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마카르킨 부소장은 "(후임) 대통령은 (푸틴처럼) 강력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후계자 지명은 중요한 결정사항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국민투표로 개헌 여부를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날 곧장 상·하원 의원, 학자, 기업인 등 75명으로 개헌 준비 실무그룹을 구성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개헌 발의 법안은 오는 2~3월 중 하원에 제출되고, 올해 5월 전까지 국민투표에 부쳐질 것이라고 타스 통신이 상원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장기 집권 계획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날 푸틴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 직후 내각 총사퇴 의사를 밝혔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반정부 운동가들에게 주요 비판 표적이 돼 왔으며, 부패 혐의에도 연루돼 경질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러시아 내 각종 여론조사에서 30%대로 낮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메드베데프 내각 퇴임은 푸틴 대통령의 향후 국정 운영에 걸림돌을 제거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푸틴 정권은 장기 집권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국민을 설득하는 효과도 원하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메드베데프 뒤를 이을 새 총리로 미하일 미슈스틴 연방국세청장이 지명됐고, 16일 러시아 하원은 찬성 383표, 기권 41표로 미슈스틴 총리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곧이어 미슈스틴을 총리로 정식 임명했다.

미슈스틴은 연방국세청 디지털화에 공헌한 업적은 인정받고 있지만, 그동안 정치적 역할은 전혀 맡은 바가 없어 푸틴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으로 누구를 유력하게 밀고 있는지는 미지수라고 FT는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16일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자리를 새로 만들고 전임 총리가 된 메드베데프를 이 자리에 앉혔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자신이 의장을 맡은 안전보장회의 기능 강화를 통해 권력을 연장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16일 푸틴 대통령은 전날 제안한 개헌에 대해 "개헌은 국가 발전을 위한 중요한 결정을 고안하는 데 있어 시민사회와 정당, 지방정부 등 역할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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