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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젠더란 무한하게 다양하며,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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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손희정-지은이 수전 팔루디 이메일 인터뷰]

‘백래시’ 팔루디가 70대에 트랜스젠더 여성 된 아버지 역사 쓴 회고록

“정체성은 야누스의 얼굴과 같아…해방이거나 타인을 억압할 수도 있다”


한겨레

다크룸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아르테·3만3000원



이제 막 출간 소식을 알렸을 뿐인데 이미 대중의 반응은 뜨겁다. <다크룸> 출간에 맞추어 2019년 내내 번역과 씨름하면서 저자에게 묻고 싶었던 것들을 전자우편으로 질문했다.

손희정 <다크룸>은 당신 아버지가 ‘헝가리 유대인’ 이슈트반 프리드먼으로 태어나서 10대 후반에 ‘동화된 헝가리인’ 이슈트반 팔루디로 변신했고, 다시 20대에 ‘미국 남자’ 스티븐 팔루디가 되었다가 76살에 ‘트랜스젠더 여성’인 스테파니 팔루디가 된 인생 역정을 추적한다. 아주 특별한 개인의 삶을 다루고 있음에도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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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팔루디(이하 팔루디) 흥미롭게도 아버지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벌어진 다양한 정체성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끊임없이 변신한 사람이었다. 홀로코스트에서부터 전후 미국사회의 번영을 지나, 포스트모던 시대의 젠더 전쟁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젠더, 민족, 종교, 우파정치학 등 모든 전선에서 펼쳐진 내 아버지의 고군분투는 지금 우리 문화가 골몰하고 있는 문제들의 핵심을 관통한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정치를 왜곡하는 시대를 살고 있고, 그것이 우파 민족주의의 부상에서부터 이민과 엘지비티(LGBT) 인권에 대한 히스테리, 브렉시트, 이슬람국가(ISIS), 그리고 트럼프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결정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손희정 당신은 1980년대 뉴라이트의 부상과 함께 시작되었던 페미니즘에 대한 미국 사회의 전방위적 공격을 다룬 책 <백래시>로 한국에 잘 알려져 있다. 어떤 독자들은 <다크룸>이 트랜스젠더 아버지에 대한 개인적인 회고록인 것에 놀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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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루디 전작인 <백래시>와 <스티프드>, 그리고 <테러드림>은 남자와 여자에게 강요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신화와, 그 왜곡된 신화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해치는가에 대해 다뤘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에 대한 구체적이고 강렬한 예다. <다크룸>에서 젠더문제에 대한 나의 사유는 지속되었고, 더 깊어졌다. 물론 <다크룸>은 취재에 바탕하고 있는 르포가 아니라 개인적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작업들과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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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 책에 전통적인 여성성을 답습하려는 아버지를 보면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비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로서 아버지의 성전환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가?

팔루디 아버지의 일대기를 쓰는 건 그야말로 페미니즘 시험대였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가정 폭력은 나의 페미니즘을 싹트게 했다. 그런데 30년의 세월을 지나 눈앞의 아버지는 온갖 ‘여성스러움’을 꾸미고 있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그녀는 점차 여성성에 대한 성차별주의적 이해를 내려놓고, 훨씬 더 충만하게 그녀 자신이 되어갔다. 그런 모습이 그녀가 처음에 선택했던 비현실적인 여성 캐릭터보다 훨씬 흥미롭고 풍부했다. 그 과정을 보면서 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신념을 확신하게 되었다. 젠더란 무한하게 다양하며, 일종의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사회가 강요하는 성역할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라는 것.

손희정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트랜스젠더 배제나 난민 추방을 말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크룸>의 관심사 중 하나가 이런 정체성 정치에 기댄 전지구적 우경화이기도 한데. 소수의 목소리와 몫을 찾으면서도,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팔루디 책을 쓰면서 정체성이란 야누스의 얼굴과도 같다는 걸 깨달았다. 정체성은 해방이 될 수도 있다. 억압을 받는 소수자성,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계급, 혹은 낙인찍힌 성정체성 등 사람들은 정체성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하고 그것을 위해 싸울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정체성은 타인에 대한 억압이 될 수도 있다. 국경에 벽을 세우고 이민자들을 막아서는 사람들에 의해 강화되거나, 배타적인 민족주의 운동에 이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핵심은 엘지비티 운동이나 페미니즘, 시민권 운동처럼 정체성을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발견을 깊게 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민족주의적 우파 포퓰리스트들처럼 자기 인식의 대체물로 사용하면서 타인에게 낙인찍음으로써 스스로를 정의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손희정 내가 <다크룸>을 번역하던 2019년, 대표적인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스트(일명 ‘터프’)인 쉴라 제프리스가 한국을 방문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터프가 그렇게 영향력이 크지 않은 극소수라고 평가한다.

팔루디 ‘터프’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란 사실 몇 개 안 되는 사건들이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것이다. 그리고 관심을 끌려는 소셜 미디어의 속성이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페미니스트와 트랜스젠더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란 없다. 중요한 건 페미니즘 옹호자인 트랜스젠더가 많은 것처럼, 트랜스 옹호자인 페미니스트 역시 많다는 점이다. 나 역시 젠더 유동성을 믿으며 본질주의적인 가정들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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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 2019년 한국에서는 ‘미투 운동’(#MeToo)으로 고발된 유명인들이 유죄 판결을 받고 낙태죄가 폐지되는 등 페미니즘 운동이 성과를 보기도 했지만, 그만큼 백래시는 심해지고 있다. 페미니스트로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린다.

팔루디 미국의 페미니즘 역시 마찬가지다. 미투 운동은 큰 성과를 보았고, 기록적인 수의 여성들이 공직에 출마했다. 페미니즘은 가히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여성과 엘지비티 권리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임신중지 권리는 전례 없는 공격을 받는 중이다. 기억할 것은 페미니즘이 지금처럼 강력하고 대중적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항의 바람 역시 맹렬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로부터 용기를 얻어야 한다. <다크룸>은 아버지와 딸 사이에서 벌어진 젠더와 평등을 둘러싼 개인적인 갈등에 대한 책이다. 이 갈등은 긴 세월에 걸친 수많은 토론을 지나면서 더 깊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심지어 용서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성평등을 둘러싼 공적인 싸움에서도 우리가 이와 같은 과정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그것이 나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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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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