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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트럼프 헛발질에 주춤… 푸틴은 종신독재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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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미국이 세상 디자인하고 러가 방해하는 역할 바뀌었다”

푸틴, 중동 중재자 급부상… 권력 구조 개편 위해 개헌 제안까지
한국일보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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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소추안 상원 송부 표결일에 미중 1단계 무역합의문에 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S 뉴스앤드월드리포트)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적 전환’ (포린폴리시)

냉전시대 패권 경쟁국에서 견제와 밀월을 오가는 사이로 변모한 미국과 러시아의 엇갈린 국내정치 상황이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미 하원의 탄핵소추안 상원 송부로, 같은 날 푸틴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위한 개헌 제안으로 세계 주요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최근 세계 각국의 국내정치 상황은 대외관계와 연동성이 강하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제는 푸틴의 세상’이란 칼럼에서 “그간 미국이 세상을 디자인하는 동안 러시아가 이를 방해하는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그 반대인 것 같다”고 평했다.

이날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서명식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성과를 자화자찬하며 흡족해했다. 하지만 서명식이 진행되는 동안 하원은 본회의를 열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용된 2건의 탄핵소추안을 상원으로 넘기는 투표를 진행해 통과시켰다. 공화당이 상원 다수여서 탄핵안은 최종적으로 부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미국의 정국 혼란과 국론 분열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미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정예군(쿠드스군) 사령관 폭살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해야 했던 ‘급박한 위협’이 무엇인지 속시원한 설명을 못하고 있고, 급기야 이날로 예정된 관련 의회 브리핑 3건 모두를 갑작스레 취소했다.

이처럼 미 의회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솔레이마니 사령관 제거 작전은 미국의 중동 내 지정학적 입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된 틈을 러시아가 파고들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러시아는 미국의 실책을 자국의 정치적ㆍ외교적 이익으로 바꾸는 능력을 계속 보여왔다”면서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죽음은 러시아의 새로운 기회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미국이 쿠르드족으로부터 등을 돌리면서 발생한 시리아 사태에 적극 개입해 중동의 중재자로 부상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죽음으로 중동 전역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시리아의 대러시아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이전에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출국 직전까지 보도하지 않았던 러시아 언론은 지난 7일 푸틴 대통령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방문을 대대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9월에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지지 표시를 해 마두로 대통령의 권력 유지에 결정적 역할도 했다. 러시아는 휴전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리비아 내전 상황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촌 곳곳에서 외교력을 과시해 온 푸틴 대통령은 사실상의 종신집권 야심까지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이날 국정연설에서 의회에 내각 임명 인준권을 주는 등 폭넓은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포함한 부분 개헌을 제안하고 국민투표로 개헌 여부를 결정하자고 밝혔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총사퇴를 발표했다.

외신은 개헌 제안을 2024년 임기가 끝나는 푸틴 대통령의 집권 연장 계획으로 보고 있다. 2000년 초 4년 임기 대통령에 처음 당선된 푸틴 대통령은 3선 금지 조항에 막혀 2008년 총리로 물러났다가 개헌 후 2012년과 2018년 대선에서 당선됐다. 임기는 6년으로 늘었지만 3선 금지 조항은 살아 있어 2024년에는 퇴임해야 한다.

총 20년간 집권한 푸틴 대통령이 이번 개헌을 관철시키면 총리 등 새로운 역할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평의회의 권한이 확대되는 것도 개헌안의 특징이다. 이를 두고 푸틴 대통령이 퇴임 후 국가평의회 의장을 맡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치분석학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러시아의 정치 전환이 예상보다 일찍 도래했다”면서 “푸틴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시스템 내부에 머물며 충성심이 강하고 애국적이며 권력 이양을 지지하는 인물을 후계자로 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이 종신집권에 시동을 걸면서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CNN은 “푸틴 대통령의 권력 연장은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도 길어진다는 의미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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