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미·이란 갈등, 핵협정 파기가 도화선…양국 모두 전쟁 안 원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Q&A로 살펴본 미·이란 갈등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8년 5월 트럼프, 핵협정 일방 파기 뒤 “60일마다 이행 수준 낮추겠다” 맞선 이란…석유 운송로 호르무즈, 예멘·사우디 등 갈등의 전장

지난해 12월 이라크 친이란계 민병대와 미군, 공격 주고받다 솔레이마니 살해로 불붙어 여객기 미사일 격추까지

미 대선·이란 총선 등 올해 중대 이슈 있어 협상 재개 가능성…‘반미’ 틈타 충돌·무장세력 재기 우려도

폭격, 암살, 미사일, 오폭.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갈등이 연초부터 세계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양국 충돌의 전개과정과 파장, 앞으로의 영향을 정리해본다.

Q. 미·이란 갈등의 발단은.

A. 두 나라의 악연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최근 사태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깬 것이다. 2015년 미국 등 P5+1(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라는 핵협정을 맺었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 한도를 지키고, 지하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 미국은 그 대신에 제재를 풀어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2018년 5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이를 파기했다. 이란은 이에 맞서 “60일마다 단계적으로 핵협정 이행 수준을 낮추겠다”고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4단계로 포르도 지하 핵시설 가동에 나섰고 두 달 뒤인 이달 5일에는 합의 이행을 모두 중단했다. 하지만 최근 긴장이 불거지면서 핵합의를 탈퇴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이행하지 않는 것뿐이지 협정을 파기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Q. 호르무즈는 왜 불안해졌나.

A. 아라비아반도 남단, 사우디아라비아와 접한 예멘에서는 2011년 시민혁명이 일어나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이후 정치세력 간 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났다. 사우디는 예멘의 친이란계 후티 반군을 없앤다며 2015년 공습을 시작했다. 이후 예멘은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장이 됐다. 미·이란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 속에, 호르무즈에서 군사적 충돌이 시작됐다. 지난해 5~8월 노르웨이·일본 상선 등이 공격을 받았고 미국과 이란이 서로 상대의 드론을 격추했다. 영국과 이란은 서로 유조선들을 억류했다. 9월에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산유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았고, 예멘 후티 반군과 이란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Q. 이라크로 충돌이 번졌는데.

A. 지난해 12월27일 이라크의 친이란계 민병대가 미군기지를 공격, 미국인 1명이 사망했다. 그러자 이틀 뒤 미군은 친이란계 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를 공습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지난 3일 미군이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살해한 것이었다. 8일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 미사일에 격추돼 176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경향신문

지난 3일 (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탑승한 차량이 불타고 있다. 바그다드 |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국제사회의 반응은.

A.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솔레이마니 살해가 제3국 주권침해라고 비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7~8일 시리아와 터키를 방문,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유럽은 무기력했다. 이란에 핵합의를 지키라고 요구했으나 설득력은 없었다. 대표적인 걸프의 친미 국가 사우디는 당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예멘 내전을 끝내기 위해 후티 반군과 2019년 12월 유럽 중재로 휴전에 합의하기까지 했던 터였다. 이스라엘도 긴장했다. 중동의 ‘미국 대리인’으로 인식돼온 만큼 보복 대상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솔레이마니 제거작전에 정보를 제공한 사실이 폭로됐기 때문이다.

Q. 이란 내 분위기는.

A. 쿠드스군은 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 내에서 대외작전을 맡는다. 레바논 헤즈볼라나 팔레스타인 하마스 등 친이란 조직들을 지원해왔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와의 싸움도 도왔다. 이 모든 과정을 이끈 솔레이마니는 이란 보수파와 군부를 대표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테헤란에서 7일 열린 솔레이마니의 장례식에는 이슬람공화국의 아버지인 아야톨라 호메이니 타계 때보다 더 많은 군중이 모여들었고, 50여명이 압사하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로 정국은 급변했다. 11~12일 테헤란 등지에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모여서 여객기 격추사건 희생자 추모 집회를 열었다. 시위대는 보수강경파들에게 반발하며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살인자” 등 구호를 외쳤다. 사실 이란 온건파 정부는 미국이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뒤집고 제재를 재개한 뒤 궁지에 몰려 있었다. 경제난 속에 지난해 11월에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당시 시위에서는 솔레이마니와 혁명수비대의 대외 팽창 정책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솔레이마니 추종자가 많았다지만 그의 노선에 대한 반감도 컸던 것이다.

Q. 미·이란이 전쟁을 할까.

A. 두 나라 모두 전쟁과는 선을 그었다. 미국은 올해 11월 대선을 치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전쟁을 끝내고 미군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교장관은 이라크 미군기지 공격 뒤 “(보복은) 종결됐다”고 했다. 사이드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 대사도 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은 미국과의 전쟁을 원치 않는다”며 “혼란이 빨리 정리돼야 한다”고 했다. 서로 ‘한 방’씩 주고받은 뒤 수위 조절에 나선 양상이다.

Q. 핵협상 재개 가능성은.

A. 이란은 다음달 총선을 치른다. 두어 달 전만 해도 정치적 무기력감과 좌절감에 젖은 개혁 성향 유권자들의 투표 무관심 속에 보수파가 압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온건파에 힘이 실리면 미국과 핵협상이 재개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잘못된 협상’을 파기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협상 의지가 없지는 않다. 다만 우라늄 농축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전면 중단할 것 등을 이란에 요구하고 있어 협상이 쉽지는 않다.

경향신문

이란 테헤란에서 지난 3일(현지시간) 시민들이 가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등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테헤란 | EPA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중동에 미칠 파장은.

A. 이라크에서는 이란의 지나친 개입 탓에 국민적 반감이 높아졌고, 지난해 11월 반정부·반이란 시위로 총리가 교체됐다. 그런데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사살하면서 반미 정서를 끌어올렸다. 이라크에는 현재 미군 5200명이 주둔하고 있다. 4일 이라크 의회는 미군 철수 결의안을 채택했다. 지금 당장 미군을 내보낼 수는 없지만 반미 여론이 커지고 미군 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분간 중동 역내 불안정도 심화될 것이다.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이라크와 레바논에서 친이란계 조직이 미국 시설을 공격하는 등 국지적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동시에 반이란 시위가 재연되고 정정 불안이 커질 가능성도 높다. IS 같은 극단주의 무장조직들이 이 틈을 타 재기할 우려도 있다. 호르무즈 긴장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 석유시설을 공격하거나 호르무즈의 작은 충돌들이 재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과 이란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서로 전투기 격추, 함정 공격 등을 감행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Q. 한국에 미칠 영향은.

A. 호르무즈의 긴장은 우리도 주시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쓰는 원유의 70%가 매일 이 바닷길을 지나온다. 또한 미국이 파병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을 둘러싼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9일 “여러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며 “미국의 입장과 우리의 입장이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고 했다. 강 장관은 14일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났다. 폼페이오 장관은 “모든 국가가 중동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강 장관은 “기여할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북·미관계에 미칠 영향도 중요하다. 당분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문제가 트럼프 행정부 관심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구정은 선임기자 ttalgi21@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