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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전문가의 세계 - 조천호의 빨간 지구](19)유한한 지구, 무한하게 쓰는 인류에겐 ‘약속의 땅’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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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격변이 불러온고대 문명도시 ‘우르’의 몰락

경향신문

이란 남서부 후제스탄주의 초가잔빌에 있는 지구라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선 기원전 관개농업이 시작되면서 초가잔빌과 인근 ‘우르’와 같은 초창기 도시들이 성장했다. 지구라트는 당시 수메르인들이 계단 모양으로 쌓아올린 거대한 신전이다. 즉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피라미드로 그들 도시의 번영·전성기를 상징한다. 그러나 위세를 떨치던 이들 도시의 문명권은 278년 동안 이어진 가뭄 등 기후 충격으로 급속히 몰락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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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프라테스강·티그리스강 유역

울창한 초원과 산림 바탕으로

수메르인들 ‘우르’ 건설했지만

화산 분출·278년간 가뭄 끝에

사회·경제·종교·정치 다 무너져


인구·부·자원 소비 최고조 땐

환경에 가하는 충격도 최고조

일상의 기후 악조건은 관리돼도

위기 임계수준 넘으면 감당 못해

번영 문명, 한순간에 사라져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문명 도시 ‘우르’를 떠남으로써 이스라엘 시조가 되었다고 성서에 쓰여 있다. 고기후학과 고고학 분석으로 아브라함이 떠났던 기원전 21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기후위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우르’는 어떤 기후위기에 직면했을까?

메소포타미아의 수천년 전 고기후는 석회동굴 안 석순과 해양 퇴적물을 분석해 알 수 있다. 이란 북부 다마밴드산에 있는 석회동굴 안 석순은 과거 기후 사건의 단서를 보존하고 있다. 이 동굴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수백㎞ 떨어져 있지만, 이 지역 먼지 중 약 90%는 시리아와 이라크 사막에서 발생한 먼지가 바람 따라 들어온 것이다. 사막 먼지는 석순을 만드는 지역 석회석보다 마그네슘 농도가 높다. 석순의 마그네슘 농도가 높을수록 사막 먼지가 많으며 기후가 건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석순은 우라늄-토륨 연대 측정으로 과거 시점을 알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리고 사막 먼지나 영양분이 많은 토양이 바람에 날려 해양 바닥에 퇴적된다. 오만 부근 바다와 홍해에서 채취한 해양 퇴적물 안에 포함된 사막 먼지의 양으로 당시 가뭄을 알아낼 수 있다.

‘우르’는 최초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바그다드 남쪽 황량한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폐허일 뿐이다. 지금부터 약 2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약 1만2000년 전부터는 홀로세 또는 충적세라 부르는 온난기가 시작됐다. 기원전 5000년을 전후로 2000년간 기후 조건이 좋아져 이를 기후 최적기라고 한다. 그 당시 유프라테스강 유역은 비가 많이 내려 울창한 초원과 산림을 이루었다. 이런 풍요로운 자연조건에서 ‘우르’를 건설한 수메르인들의 농경 공동체가 시작됐다.

기원전 약 3800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계절풍 방향이 바뀌어 강수량이 줄어들었다. 비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던 농부들은 강의 유량이 줄어들어 위기에 처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메르인은 중앙 집중적인 관개시설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관개시설로 물을 대는 시기와 양을 통제할 수 있어 씨를 뿌리고 곡물이 자라고 추수하는 시기가 기후 조건과 직접적으로 일치하지 않아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도시들은 관개농업을 통해 발생한 잉여 농산물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농민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물을 댈 수 있도록 제방을 세우고 운하를 파고 수송체계를 정비하고 곡물을 분배하는 것은 하늘만 쳐다보며 비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관리가 필요했고 결국 사회계급을 만들어 냈다. 또한 물품과 정보가 다른 도시로 퍼져 나가고 모일 수 있었다. 도시에서 문명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문명(civilization)은 라틴어로 도시(civitas)를 뜻한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우르’를 비롯한 초창기 도시들이 점점 더 복잡한 사회로 성장했다. 수메르인들은 수레바퀴, 문자, 수학, 천문학, 그리고 그 유명한 길가메시 서사시와 같은 문학을 발전시켰다. ‘우르’가 위세를 떨치던 시기에 ‘지구라트’라는 거대한 신전을 세웠다. ‘지구라트’는 계단 모양으로 쌓아 올린 테라스형 피라미드였다. 아직도 지구라트는 인간이 만든 중요한 종교 건축물로 여겨지고 있다.

‘우르’는 자연적인 기후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건설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도시가 자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는 견딜 수 있는 자연조건에서만 발전하고 지속할 수 있다. 결국 ‘우르’는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두 차례의 극심한 기후 충격으로 혼돈에 빠졌다.

첫 번째 충격은 기원전 2200년경 메소포타미아 북쪽 지방에서 일어난 거대한 화산 분출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화산재가 성층권으로 흘러들어 햇빛을 막아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고 강수량마저 줄어들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278년 동안 이어진 가뭄이 시작됐다. 겨울철에는 전혀 비가 오지 않았고,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서 해마다 일어나던 범람도 중단되었다. 이것이 두 번째 충격이었다.

‘우르’는 가뭄으로 인한 난민 문제도 해결해야만 했다. 유목 부족들은 북쪽 평원이 말라붙자 관개시설과 도시가 있는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르’ 통치자는 군대를 보내 유목 부족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길이 180㎞의 차단 장벽을 건설했다. 그런데도 피난처를 찾아 흘러들어온 난민들 때문에 ‘우르’ 인구가 세 배나 증가했다. 만리장성과 베를린 장벽이 그 역할을 못한 것처럼 이 차단 장벽도 난민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기후 격변과 그에 따른 기근은 지배 권리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충분치 않은 경우 사회·경제 위기를 넘어 종교·정치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정권 몰락과 문명 붕괴까지 초래하게 된다. 우르에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결국 몇 세대를 지나지 않아 ‘우르’가 무너졌다.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은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에서 “우르는 작은 재난들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면서 성장했지만, 큰 재난에는 갈수록 취약해졌다. 즉 문명은 취약성과 맞바꾸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메르인들은 일상적인 기후 악조건에서는 환경을 관리하는 데 능숙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임계 수준을 넘자마자 사회가 복잡해져 위태롭게 유지되던 균형이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이로 인해 문명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너졌다.

경향신문

한동안 번영을 지속하던 문명도 갑작스러운 붕괴를 맞게 된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과거 대부분의 문명이 전성기에 이른 후, 갑작스레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인구, 부, 자원 소비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것은 환경에 가하는 충격도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이때 자연환경은 황폐해지고 자연 자원은 빠른 속도로 고갈됐다. 여기에 부족해진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로 빈부 격차와 사회적 갈등이 깊어졌다. 결국 사회 불안정으로 문명이 일순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처럼 문명에는 어두운 역설이 있다. 문명의 성장과 취약성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문명이 성장할수록 그 부작용은 더 위험하다. 성장에는 더욱더 비용이 따른다. 더 많은 자원, 에너지와 식량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성장으로 복잡성이 증가하면 수익성이 줄어들어 갈수록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지구는 우리 요구를 점점 맞출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담수 가용성, 식량 생산과 생태계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성장에 매몰되면 사회는 자신을 유지하는 데 사용해야 할 자원을 예기치 못한 위기 대응에 사용해 취약성이 증가한다. 그리고 성장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당면한 문제를 당장 해결하는 데 집중하므로 장기적인 위기 대응에는 취약해진다.

과거 문명은 산과 바다와 먼 거리로 인해 그 범위가 제한되었다. 중국 문명, 헬레니즘 문명과 마야 문명은 같은 시대에 공존했다. 과거 문명은 하나가 사라진다 해도 다른 문명들은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할 수도 있었다. 오늘날 시장을 확대하려는 자본주의는 컴퓨터, 통신, 운송의 효율화를 통해 더욱더 강화됐다. 각국 정부는 성장을 위해 재화와 자본의 전 지구적 흐름을 가속하려 한다. 이로써 세계는 훨씬 더 단단하고 단일하게 통합됐다. 세계화로 연결되는 기회가 늘고 그 강도가 커질수록 경직성이 강화된다. 이렇게 되면 시스템 내외에서 비롯된 혼란에 취약해진다.

오늘날 문명은 감당할 수 없는 나쁜 일이 한 번도 일어나 본 적이 없는 조건에 맞추어져 있다. 안정된 기후 조건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취약성만을 고려할 뿐, 앞으로 있을 기후 충격으로 인한 위험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다양성은 점점 줄어들고 수천년의 시험을 견뎌온 지역적인 생존 전략은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 바구니 하나에 우리가 가진 달걀 모두를 담고 있다. 소란스러운 지구에서 생명체가 35억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효율을 극대화하고 무차별적으로 통합했기 때문이 아니라 안전을 추구하면서 여러 대비책을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딱 맞는 기후에서 출현한 진화의 산물이다. 현재 문명은 정상적인 느낌으로 지속하고 있긴 하지만 이대로 가면 분명 갑작스러운 위기를 마주칠 것이다. 인간은 기후를 바꿀 수 있지만, 인간에게 딱 맞도록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속 불가능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균형과 질서의 이름으로 은폐되고, ‘체제 바깥은 죽음’뿐이라는 대안 부재로 인해 ‘성스러운 성장’은 유일하고 영원한 것으로 추앙받는다.

도시는 여전히 성장하고 사람들은 그곳으로 몰려든다. 그 어떤 식량도 생산해 낼 수 없는 복잡한 현대 도시에 우리는 밀집되어 있다. 이곳에서 우리 대부분은 집에 일주일분도 안되는 식량을 가지고 있지만, 안심하고 살아간다. 전 세계에 걸쳐 연결된 효율적인 물류망이 언제나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해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도시 ‘우르’의 성장과 붕괴는 이런 우리 삶이 치명적으로 취약하며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해준다.

우르 멸망 당시 수백년에 걸쳐

지구 기온 자연적으로 0.5도 변해

100년간 인류는 ‘1도’ 변화시켜

물·식량 부족, 생태계 위기 직면

삶의 방식에 문제 있음이 드러나


아브라함은 메마른 우르 떠나

젖과 꿀 흐르는 가나안으로 갔지만

인류는 하나의 문명으로 연결

지금 살고 있는 땅, 지구밖에 없어

과잉 끝내고 절제의 시간 걸어야


‘우르’가 멸망하던 당시 수백년에 걸쳐 지구 평균 기온이 자연적으로 약 0.5도 변했다. 지난 100년 동안 인류는 1도를 변화시켰다. 이 변화는 우리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징표다. 이로 인한 위기는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므로 그것을 막을 능력도 우리에게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무너지는 ‘우르’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사막 너머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우르’를 떠날 수 있었다. 오늘날의 기후위기에서 우리는 떠날 수 있는 약속의 땅이 없다. 인간은 지구에 이미 가득 찼고 하나의 문명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땅, 지구만이 약속의 땅이다.

유한한 지구에서 살면서 이 세상이 무한할 것처럼 살아온 시대는 막을 내린다. 지금 이대로 가면 지구가 우리 욕망보다 먼저 고갈돼 지구 스스로 문명을 끝장낼 것이다. 지금까지 삶의 방식에서 떠나야 한다. 과잉의 시간은 끝났고, 절제의 시간이 왔다. 이것만이 이 지구를 약속의 땅이 되게 할 수 있다.

▶필자 조천호

경향신문

경희사이버대 기후변화 특임교수. 국립기상과학원에서 30년간 일하고 원장으로 퇴임했다. 연세대학교에서 대기과학을 공부했다. 전 세계 날씨를 예측하는 수치모델과 전 세계 탄소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구축했다. 기후변화 과학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공부하고 있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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