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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미·중 1차 무역합의 속 빈 강정…미국 경제 좋아보이는 건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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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합의, 의미 있는 성과 못 내

무역전쟁 최소 몇 년은 이어질 것

트럼프, 시진핑 굴복시켜도 실익 없어

러스트벨트 일자리 회복 불가능

미국도 경제 위기…저축률 2.5% 불과

과잉 소비 탓 무역적자 더 커질 듯



[세계 경제석학 2020 진단 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



중앙일보

스티븐 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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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다른 나라가 미국 제품 베끼는 것을 허용한다면, 이는 우리의 미래를 훔치는 일이다. 더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일까.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5년 9월 뉴욕에서 플라자 합의를 마치고 일본을 겨냥해 한 발언이다. 30여 년이 흐른 후 미국은 다시 무역전쟁을 벌였다. 미국이 지목한 ‘빌런(악당)’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판으로 패배한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보냈다. 과연 중국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까.

미국 월가의 대표적인 ‘중국통’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의 답은 “아니오”였다. 그는 “최근 국제 정세는 리얼리티 쇼 출신의 트럼프를 주인공으로 한 80년대 영화를 리메이크한 수준”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앞으로 벌어질 상황은 과거와 전혀 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과거 미국·일본과 달리 현재의 미국·중국은 훨씬 더 많이 얽히고설킨 관계가 됐기 때문이다. 50여 년간 켜켜이 쌓인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결과다.

중국, 세계에서 미국 국채 가장 많이 보유

미국 뉴헤이븐 예일대 캠퍼스에서 만난 로치 교수는 “그동안 미국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저렴한 중국산 제품은 미국 중산층 가계에 큰 도움이 됐고, 중국도 미국으로부터 연간 1300억 달러(약 152조원)어치 상품을 구매한다”고 말했다. 악당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사실 미국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심지어 중국은 전 세계에서 미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 경제가 무너져 미 국채와 달러화 표기 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하면 미국 경제도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치 교수는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 대해서도 “속 빈 강정 같은 형편없는 딜”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1차 무역합의를 했지만 양국 국민에게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와 시진핑의 위선적인 협상(phony deal)”이라고 폄하했다. 양국 정상의 일시적인 ‘정치 쇼’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Q : 미·중 무역전쟁이 협상으로 마무리되는 듯하다(인터뷰 후인 지난 15일 양국은 1차 무역합의문에 서명했다).

A :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이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탄핵 조사를 받으며 정치적 수세에 몰린 트럼프가 중국의 미국산 제품 수입 규모 확대를 통해 국내 정치 문제에서 벗어나려는 것뿐이다. 아울러 연말연시는 경제지표상 아주 중요한 시기다.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 새해 첫날까지 소비 심리를 최고조로 올려야 경제지표가 좋게 나와 2020년 재선에 유리하기 때문이다(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협상 타결을 알린 것은 지난해 12월 13일이었다). 1단계 합의는 구조적인 쟁점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일단 ‘합의 무드’만 조성하려는 우스꽝스럽고 얄팍한 정치적 노력일 뿐이다. 양측이 서명한다고 해도 2단계 합의에서 분명히 문제가 발생할 거다.”

Q : 트럼프도 2020년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선 미·중 무역전쟁을 끝내는 게 좋지 않나.

A : “가을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미·중의 무역갈등 기조를 끌고 갈 것이다. 트럼프는 결국 중국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미국 제품을 구매하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할 텐데, 지금 승전고를 울리기엔 재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울러 미국은 102개국과 무역 불균형 문제를 가지고 있다. 중국을 상대로 유리한 무역합의를 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미국인도 트럼프가 그동안 쓸데없는 싸움을 벌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경우 유권자가 등을 돌릴 수 있어 트럼프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Q : 그러면 무역전쟁은 얼마나 지속되나.

A : “최소 몇 년, 최대 수십 년 동안 유지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군사 충돌까지 벌어질 수 있다. 현재 미국은 남북전쟁(1861~1865년) 이후 최악의 정치 양극화 상태를 겪고 있다. 임금격차로 인해 미국 내 불평등 이슈는 지난 15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 중서부 중산층은 중국 때문에 스스로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트럼프는 더욱 중국을 거칠게 공격할 것이다. 중국을 괴롭힐수록 유권자들은 본인을 더 강력하게 지지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치 교수는 미국은 세계 경제에서 왜 ‘나 홀로’ 순항 중인가에 대한 질문에 코웃음을 쳤다. 미국 경제가 좋아 보이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Q : 미국 증시는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실업률은 5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이유가 뭔가.

A : “다른 나라 경제가 워낙 안 좋아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뿐이지 미국도 위기에 직면했다. 10년 넘게 시중에 풀린 돈이 자산 가격을 올려 지표상 티가 나지 않는 것뿐이다. 미국 성장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4~4.5%를 유지하다가 최근 2%대로 떨어졌다. 이미 경고음은 울렸다.”

Q : 2020년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입장인가.

A :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2020년 상반기까지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유지되겠지만, 문제는 연말부터 불거진다. 미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낮은 저축률이다. 순저축률(가계·기업·정부 합산)이 전체 소득 대비 2.5%에 불과하다. 분기 기준으로 1%대로 떨어진 적도 있다. 미국 저축률은 70년부터 2000년까지 6.3%에 달했는데, 지금은 3분의 1 수준이다. 금리가 올라야 가계가 저축하고, 저축이 늘어야 미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 무역수지 적자의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Q : 미국인이 저축보다 소비를 많이 하기 때문에 무역수지 적자가 줄어들기 어렵다는 얘기인가.

A : “그렇다. 미국이 중국과 어떤 무역합의를 하든지 간에 무역수지 적자는 앞으로 10년간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인이 과잉 소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달러화 약세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심지어 저축률이 0으로 떨어질 경우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를 자본수지 흑자로 보전하기 위해 해외 자금을 미국 시장에 끌어들이게 된다. 이 경우 경상수지 적자는 더 늘어난다.”
중앙일보

스티븐 로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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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소련과 냉전 땐 저축률 8.8% 달해

Q : 최악의 경우 어떤 일이 생기나.

A : “저축률 급락은 미국의 투자 여력을 제한한다. 특히 중국이 기술적으로 급속도로 쫓아오고 있는 시점에 이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소련과 냉전을 벌일 때만 해도 저축률이 8.8%에 달했고 경제가 탄탄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Q : 그렇다면 미·중 무역전쟁의 승자는 결국 중국이라고 보나.

A : “피해는 미국 쪽이 더 크다. 트럼프가 시진핑을 굴복시킨다고 한들 경제적 실익은 못 얻는다. 소련과 냉전을 벌이던 시절 미국 제조업은 전체 노동시장에서 4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8.5%에 불과하다. 트럼프가 그토록 외치는 ‘러스트벨트(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 일자리 되찾기’는 ‘미션 임파서블’에 불과하다. 미국인들도 제발 아이폰 공장을 본국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미국 소비자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미국 땅에서 아이폰을 만들 수 없다.”

■ “중국이 미국 추월할 것” 예견한 월가 대표적 중국통

로치 교수는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 아시아·태평양 회장 출신으로 2010년부터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중국 경제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의 대표 수업은 ‘넥스트 차이나’. 중국 경제가 생산자 모델에서 가계 소비에 의한 경제 성장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역할을 분석한다.

로치 교수는 지난 10년간 예일대 강의에서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는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예견했다. 중국 경제에 대한 그의 낙관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성장 속도는 더 빨라졌다고 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지속되겠지만, 중국의 기술 혁신도 어떤 방향과 속도로 발전할지 가늠할 수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미국을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10년 전엔 예측하지 못했던 변화를 꼽기도 했다. “첫째는 미·중 무역전쟁이다. 미국이 중국을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노골적으로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둘째는 중국의 기술 진보 ‘속도’다. 베이징에서 온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전문가인 리카이푸 창신공장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는데, 예상보다 중국이 기술 면에서 앞서 나가고 있어 놀랐다.”

뉴헤이븐(미국)=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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