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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필동정담] 한류시대 `중드`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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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집 텔레비전이 중국 드라마 채널에 고정되어 있다. 한동안은 신선들 사이의 로맨스 판타지물 같은 걸 틀다가 요즘은 가상의 왕국에서 벌어지는 궁중 권력 암투로 바뀌었다. 둘 다 사극이다. 채널 선택권자인 식구는 중국 문화에 호감이 있는 편이 아니고 사극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왜 보느냐"고 물으니 "중독성 있다"고 한다. 일단 배우들의 '비주얼'이 굉장하다. 선남선녀(善男善女)가 아니라 선남선녀(仙南仙女)같다. 그중에는 동아시아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국적 얼굴도 있다. 식구에 따르면 소수민족 출신이되 틀림없는 중국인이라고 한다. 새삼 중국의 크기를 실감한다.

예전에도 인기를 끈 중국 드라마는 있었다. 삼국지연의, 수호전, 판관 포청천 같은 전통 소설 기반의 드라마는 사골 우려내듯 여러 번 리메이크됐는데 한국에도 고정팬층이 있다. 요즘 나오는 중국 드라마는 '우려먹기'가 아니다. 배경만 사극일 뿐 스토리 구조는 완전 새것이다. 육수의 기본 베이스 개념으로 전통극 분위기만 살린다. 중국은 땅덩이와 인구는 둘째치고 역사와 문화적 깊이에서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다. 워낙 크고 오래되다 보니 매우 중국적인 것도 세계적으로 통한다. 이건 문화콘텐츠 생산에서 어마어마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중국 역사와 문화 곳곳에 박혀 있는 스토리 원자재를 주워서 약간만 변주·가공해도 세계인들이 좋아할 만한 새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대충 만들어도 어느 정도는 맛있는 중국 요리처럼.

그룹 BTS와 영화감독 봉준호 덕분에 한류가 또 한 시대를 열고 있지만 중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발전 속도를 보면 위기감이 생긴다. 우리가 맨땅에 헤딩하듯 이룩한 것을 저들은 참 수월하게도 따라온다. 제조업이나 문화산업이나 그나마 우리가 경제적으로 앞서 있을 때라야 대중문화에서 중국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중국이 우리보다 잘살게 될 때 중국인들은 더 이상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을 것이다. 한중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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