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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매경의 창] 자살이라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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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여기 외면하고 싶은 통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살에 관한 것입니다(언론에서는 흔히 '극단적 선택'이라고들 부르던데, 저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10만명당 자살자의 수는 2011년 31.7명으로 정점에 오른 후에 점차 2017년 24.3명으로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2018년에는 그것이 26.6명으로 10% 가까이(정확하게는 9.5%) 늘었습니다(아직 2019년 통계는 공표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이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OECD 회원국의 인구 10명당 평균 자살률보다 2.2배나 많은 것입니다. 자살자의 총수로 보면, 2017년 1만2463명에서 2018년에는 1만3670명으로 늘었고, 이것은 교통사고나 산재 기타 재난으로 인한 사망을 전부 합한 것의 3배에 달합니다. 도대체 2018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요?

그렇지 않아도 사람의 속내는 알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하물며 사람이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어서 아예 이 세상과 결별하기로 결단하게 되는지, 그 고통과 절망의 실상을 어떻게 낱낱이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청소년 자살 시도율'이라는 것을 보면 참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최근 12개월 동안에 자살을 시도하였던 중학교·고등학교 학생들의 백분율입니다. 2018년에는 무려 3.1%, 즉 학생 100명 중 3명은 자살을 시도한 일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여학생은 4.1%나 되어, 남학생 2.2%의 두 배 가까이나 됩니다.

이 점에 관한 통계에도 그사이에 변동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10년 중 가장 높았던 2010년에는 청소년 자살 시도율이 놀랍게도 5.0%였습니다. 그 후 그것은 점점 낮아져서 2016년에는 2.4%까지 낮아졌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2017년에는 2.6%, 그리고 2018년에 위와 같이 3.1%로 높아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10대, 20대 및 30대 남성의 경우 자살이 제1위의 사망원인인 것도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자살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벌써 떠났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자살은 환경 보호만큼이나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로 의식되고 있습니다. 2003년에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는 9월 10일을 '자살 예방의 날'로 정하고, 그 다음해부터 관련 행사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자살 문제의 심각성, 그리고 그 대척점을 이루는 생명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자살의 예방과 대책 마련에 공동 노력하고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정부도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11년 3월 30일에 정부가 앞장을 선 '자살 예방 및 생명 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어 다음해 3월 31일에 시행되었습니다. 이 법률은 자살에 대한 국가적 책임과 예방 정책, 자살 예방 교육 등에 관해서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건강정책국에 자살예방정책과를 두었고, 또 보건복지부 산하에 중앙자살예방센터를 두어서 자살 예방을 위한 각종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자살 관련 전문 상담을 하는 전화번호가 1393이고, 그것이 24시간 내내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정책적 조치만으로 자살 현상이 쉽사리 손에 잡힐 것인지 의문이 적지 않습니다. 자살이 많은 것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켕이 '자살론'에서 분석한 대로 우리 사회의 근본적 됨됨이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짧은 기간 동안에 엄청난 사회 변화를 겪어서, 하나의 인생에서 여러 개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니 낮에는 지킬 박사로, 밤에는 하이드로 살았던 그 사람처럼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온갖 어려운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평안은 우리 역사의 격동이 어느만큼 가라앉은 후에야 찾아올 것입니다.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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