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검찰청은 “전문성을 요하는 전담부서의 경우 신속하고 효율적인 범죄 대응을 위해 존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법무부가 전국 직접수사 부서 41곳 중 13곳을 형사·공판부로 전환하는 개편안을 발표한 것은 지난 13일이었다. 다음 날(14일) 법무부는 대검에 이틀의 시간을 주고 의견을 보내라고 했다. 이에 ‘검찰 의견을 수렴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법무부는 어제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급 보직에 대한 내부 공모에 나섬으로써 대규모 인사를 예고하고 나섰다.
문제는 직제 개편의 숨은 목적이다. 검찰 안팎에선 직제 개편 직후 차장·부장검사 등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서 현 정권 비리 의혹을 조사해 온 수사팀을 물갈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사 인사 규정’상 검찰 중간 간부의 최소 보직 기간은 1년이다. 그런데 직제 개편이 있는 경우는 예외라는 점에서 반년 만에 다시 인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과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을 조사 중인 수사라인이 해체될 것이란 우려와 함께 해당 검사들에 대한 ‘2차 보복 인사’설이 나오고 있다.
법무부 안이 강행될 경우 부정부패와 민생 침해 사범에 대한 수사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전문수사 역량 강화 차원에서 운영해 온 증권범죄, 조세범죄, 식품·의약 등 전담수사 부서도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들 부서가 사라지면 사건 처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수사 공백은 결국 국민의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경제범죄 등 부패범죄 수사의 축소를 가져올 것”이라며 재고를 촉구하고 나선 것 아닌가.
청와대 수사를 막자고 사정(司正) 시스템을 뒤흔드는 것은 누가 봐도 또 하나의 ‘농단’이다. 검찰이 수사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한다면 문제점을 고치면 되는 일이다. 정치권력의 부정부패가 온존하는 상태에서 견제 기능이 무력화된다면 어떤 자들이 미소를 지을지 생각해야 한다. ‘합법적 방법’으로 제도의 취지와 법 정신을 무너뜨리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국가기관의 가면을 쓴 정치집단이 아니라면 이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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