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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산모퉁이 돌고 나니] 탐욕을 이긴 후 찾아오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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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주연 산마루교회 담임목사


모든 수도자의 여정은 영적인 싸움 과정이다. 시작은 자신과 싸우는 일이며 마지막은 어두운 영과 벌이는 대결이다. 처음 인간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온 뱀은 선악과로 유혹했다. 도저히 물리칠 수 없을 정도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해 삼켜버렸다. 인간은 탐욕에 빠져들었다. 관음증에 걸리도록 보지 않으면 못 배기는 정욕에 젖어들었다. 계산이 밝아 속일 수 있으리만큼 사악한 간계가 발현되었다. 눈 덮인 골짜기를 바라보는 내게도 이 세 가지 선악과의 효력이 지나온 삶에 얼룩처럼 나타났다.

지난겨울 노숙인이 주축이 된 합창단이 성탄을 맞아 공연하게 됐다. 오랫동안 진행한 어느 교회 대규모 합창단 정기 연주회에 초대받았다. 형제들이 연습하려고 모이면 간식과 저녁 대접도 했다. 그런데 어느 연습 날 절반 이상이 불참했다. '이렇게 모이는데 왜 돈을 주지 않느냐'는 말이 나왔다. 한편에선 출연료를 주면 더 열심히 하게 되어서 멋진 연주회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설득했다. "구제가 필요하신 분은 말씀하십시오. 그것을 돕겠습니다. 돈은 안 됩니다. 이번 연주회는 우리가 그동안 받은 사랑을 성탄을 맞아 여러 이웃과 기쁨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 뒤 주일 예배에서 형제들은 열심히 연습했다. 합창대원들 앞에서 지휘자에게 금일봉을 드렸다. 간식비에 보태서 연습 때 푸짐하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모두 손뼉을 쳤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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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무료 급식 시간 후 합창단원 한 분이 대표라며 찾아왔다. 까닭을 물으니 "금일봉에 들어 있는 액수가 얼마인가? 그것을 지휘자가 혼자 떼먹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와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돈을 나누어서 현금으로 달라는 것이 중론이라고 했다. 감사하다는 마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언제부턴가 고마움이나 염치가 아니라 '현금 나누어 먹자'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대표에게 분명히 말씀드렸다. "한두 명이 나와도 좋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권면은 15년 이상 노숙인 사역 중에 얻은 결론이다. 40일간 굶주렸던 예수께 사탄이 나타나 유혹하자 물리치신 뜻을 따르는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돈과 물질로 인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둘째 인간 예수는 첫 인간 아담과 달리 탐욕을 물리쳐 이긴 것이다. 물질은 육은 살릴 수 있으나 영을 지닌 인간성을 죽인다. 놀랍게도 형제들은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침내 지휘자와 열심히 연습해 서울역전 동자아트홀에서 멋지게 공연했다. 공연 그 자체보다 공연하는 그 마음이 더욱 아름다웠다. 얼마 후 그 형제들께 김장을 담그는 데 참여해 주실 것을 부탁했다. "여러분이 주로 드실 것이니 여러분이 하시면 좋겠습니다. 돈은 드리지 않습니다." 많은 분이 이른 시간에 와서 김장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큰일을 끝냈다. 형제들은 손을 벌리던 순간엔 볼 수 없던 당당함과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낯으로 어깨를 펴고 떠났다.

어느 추운 날 영국 런던 인근 해안에서 갈매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유를 알아보았다. 추위에 얼어 죽은 것인가? 아니었다. 전염병도 아니었다. 이유는 추위로 관광객 발길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죽은 갈매기들은 관광객이 주는 먹이에 의존했던 것이다. “주님, 이 산과 골짜기를 하얗게 바꾸시듯,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탐욕마저 하얗게 바꾸어 주시옵소서! 사랑으로 함께 일어서게 하시옵소서!”

[이주연 산마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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