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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양해원의 말글 탐험] [108] 성공한 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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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양해원 글지기 대표


“너 지금 내 말을… 이 아버지 말을 거역하겠다는 거냐?”

자기가 병원장인 본원(本院)으로 오라는데 말을 안 듣는다. 게다가 아들이 더 있겠다는 시골 병원은 원수 같은 인물이 태산같이 버티고. 발끈할 만하다. 지나간 TV 드라마에서 들은 이 한마디가 현실 무대에 겹친다. 주연은 법무부 장관과 그의 명(命)을 거역(拒逆)했다는 검찰총장. 거역, 왕정 시대인 듯 으스스하다. 된통 혼쭐나게 생긴 그 사람 이름이 윤석열(尹錫悅)이라는데. 사람들이 더러 '윤석렬'인 듯 부르니 헷갈린다. 대체 [서결]이오 [성녈]이오?

悅은 음이 '열'뿐인지라 '석렬'로 쓸 수 없다. 따라서 소리도 [서결]이 옳다. 같은 한자를 쓰는 식열(食悅)이나 법열(法悅)을 [시결] [버별]로, 음이 같은 극열(極熱) 단열(斷熱)을 [그결] [다녈]이라 말하는 것과 이치가 같다. 한데 錫悅을 [석녈→성녈]로 발음하는 것은 悅을 '렬'로, 아니면 '매울 렬(烈)'쯤으로 잘못 알았거나, 엉뚱한 ㄴ 첨가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직렬(直列)이 [직녈→징녈]로 소리 나는 것과 같은 흐름이다.

특이한 것은, 구조가 같은 작열(灼熱)은 [자결]을 몰아내고 [작녈→장녈]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혹열(酷熱·[혹녈→홍녈])도 그렇다. 역시 熱을 '렬'로 착각한 데서 비롯한 자음동화(자음접변)인 듯하다. 방열(放熱)은 그냥 [방열]인데 정열(情熱)을 [정녈]로 발음하는 현상과 마찬가지. 법칙 거역에 성공한 셈이랄까.

음이 '렬'이라고 마음 놓을 수 없다. 모음이나 ㄴ 뒤에 오는 한자음 '렬'은 '열'로 '률'은 '율'로 적게 돼 있다(분열, 선열, 운율…). 이런 낱말은 본음을 따르면 안 되고 앞 음절 받침 ㄴ을 연음(連音)해 [부녈] [서녈] [우뉼]로 소리 내는 것이다.

병원장인 아버지가 씌운 거역이란 굴레는 힘을 못 썼다. 권모술수만 밝힌 응보(應報)인가. 극이니까 그랬다 치자. 대본 없는 거역 드라마는 어디로 흐를까. [서결]이란 이름은?

[양해원 글지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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