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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어린이집 통학차량 사고·보육료 유용, ‘엄벌’ 물건너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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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방치 사망에 文대통령 “보육현장 퇴출” 17개월 지났지만

국회, 정부 개정안 외면… 총선 앞 원장들 반대에 입법 실패 우려

폭염 속 어린이집 통학차량 내부에 4세 아동이 7시간 넘게 방치돼 끝내 숨졌던 사고가 발생한 2018년 7월, 사고 일주일 뒤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법을 어긴 어린이집 관계자를 보육현장에서 퇴출하도록 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일보 확인 결과, 어린이집 통학차량에서 중대한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린이집 종사자의 자격을 정지하도록 한 정부법안은 국무회의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제정은커녕 입법화 과정도 제대로 밟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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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문 대통령 발언과 법안 마련 후 후속조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복지부는 지난해 10월 1일 ‘어린이집 회계 투명성 및 통학차량 안전 관리 의무를 강화합니다!’라는 이름의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가 직접 만든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홍보했다. 개정안에는 문 대통령이 언급했던 ‘자격정지’ ‘보육현장 퇴출’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개정안은 어린이집 통학차량에서 모든 아동이 하차했는지 확인하지 않아 사망ㆍ중상해 사고가 발생한 경우, 어린이집 시설을 폐쇄하고 원장ㆍ보육교사의 자격을 최대 5년간 정지하도록 했다. 또 어린이집 운영자나 원장이 어린이집 재산과 수입을 보육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규제강화 소식은 주요 방송사와 신문사 등 30개 이상의 언론사에서 보도됐다.

그러나 개정안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조차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선거법 개정 등으로 여야 대립이 격해지면서 국회가 부실하게 운영됐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게 아니라 정부입법 법안이니 관심이 덜해서 상임위가 열려도 논의 순서가 뒤로 밀렸다”라면서 “하반기 국회 일정상 법안소위에서 다뤄질 기회가 없었다”이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일각에선 이대로 가면 개정안 입법이 실패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20대 국회 정기국회가 종료돼 국회 일정을 가늠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4월 총선을 앞두고 어린이집 원장들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거세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서 ‘과실로 인해 발생한 사고에 대해 폐쇄명령을 내리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입법’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국회가 실시한 입법예고 기간엔 3,600여건의 반대의견이 몰렸다.

오승은 전국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해당 법안은 정부의 입법예고 이후 국회에서 또 이례적으로 입법예고 기간을 두는 등 처리과정이 길어지고 있다”라면서 “현재는 원장이 보육료를 가족 휴대폰 요금으로 사용해도 처벌이 힘든 상황이라서 반드시 어린이집 수입을 전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보육입법을 이뤄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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