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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여행] 고양이와 호랑이, 그리고 효자…나만 알고픈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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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 효자마을 낭만골목

반희언 효자비에서 동네 이름 유래

반희언 효행 그린 돌담

구름빵 주인공 그린 좁은 골목까지

이데일리

효자마을 낭만마을에는 기존 돌담의 형태와 성질을 그대로 보전한 채 자연의 생명들을 동화적인 이미지로 구현한 벽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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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봄내, 맑은내. 춘천의 우리말 이름이다. 의암댐·소양댐으로 막히기 전까지 소양강은 눈부신 백사장을 적시고 흐르는 투명한 물길이었다. 정철, 김시습, 이사벨라 버드 비숍, 이은상 등이 이 물길을 지나며 감탄사를 쏟았다. 호숫가 도시가 된 지금도 춘천은 걷기 좋은 도시다. 1960~70년대 산비탈 동네 풍경의 ‘풍물시장’과 꼬불꼬불한 ‘아리랑골목’, 하늘로 오르는 ‘망대골목’ 등 춘천에는 정겹고도 쓸쓸한 옛 골목이 여럿 있다. 이번에 찾아간 골목은 ‘효자동 낭만골목’.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골목을 걷다 보면 애틋한 추억이 되살아나는 그런 골목이다. 어느 해 좋은 겨울날, 꼭 한 번 걸어보시라. 어쩌면 그리웠던 누군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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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마을 낭만골목 벽마다 그려진 재밌는 벽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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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마을 탄생 비밀을 간직한 반희언

약사천을 따라가다 효자1동 행정복지센터로 들어섰다. 센터 앞 거리가 효자마을 낭만골목 입구다. 이 마을에는 남다른 이야기가 있다. 효자마을 탄생과 관련한 반희언에 관한 이야기다. 반희언은 조선 중기 중병에 걸린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인물.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대룡산에 가면 시체 3구가 있는데, 그중 가운데 시체의 목을 잘라와 고아서 어머니께 드리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산신령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어머니께 약을 드리고 솥뚜껑을 열어보니 시체 머리 대신 산삼이 있었다. 아들의 정성 때문인지 노모는 병이 나았다. 원기를 회복한 노모는 그해 겨울, 갑자기 딸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반희언은 딸기를 구하러 산으로 갔다. 우여곡절 끝에 딸기를 구했지만, 눈보라에 길을 잃고 헤매다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는 반희언을 해치는 대신 그를 집까지 태워다주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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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마을 낭만골목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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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는 그의 효행에 감복해 효자장려를 내렸다. 이후 마을 입구에 효자문을 세웠다. 이런 연유로 효자문거리라 불리다가 효자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효자문 옆으로 들어선 점집들을 지나 본격 낭만골목에 들어선다. 오르막길로 50여m쯤 가다 보면 평양막국수 간판과 천사 날개 벽화가 보인다. 여행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벽화다. 이정표를 따라 길을 나선다. 골목은 각양각색의 벽들이 늘어서 있다. 이 벽에 반희언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벽화가 곳곳에 그려져 있다. 전국의 비슷비슷한 벽화마을과 달리 마을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잘 녹여냈다. 벽화를 따라 걷다보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한다. 이곳에 효자상이 있다. 반희언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산삼을 손에 들고 있는 어머니를 반희언이 업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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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마을 낭만골목 입구에 그려진 천사날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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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곳곳에 새겨진 벽화와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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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마을 낭만골목에 설치한 애니메이션 ‘구름빵’ 조형물


효자상과 경로당을 지나 좁은 골목길로 다시 들어선다. 길고 좁은 골목길 사이로 난 벽 곳곳에서 홍비와 홍시 등 고양이 벽화와 조형물들을 만날 수 있다. 홍비와 홍시는 춘천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구름빵’의 주인공으로 고양이를 의인화했다. 주민들이 직접 만든 고양이 조형물과 벽화 등 90여 점이 낡고 좁은 골목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이 마을은 길고양이로 몸살을 앓던 마을이었다. 낡고 빈집이 많아서였다. 당시 먹잇감을 찾지 못한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뒤지거나 물어뜯어 악취가 진동했다. 밤에는 고양이 울음소리로 인해 더 음산했다. 주민들은 고심 끝에 전쟁 대신 공생을 택했다. 그렇게 시작한 첫 번째 일이 ‘구름빵 주인공 벽화 그리기’ 사업이었다. 여기에 돌감 아래 작은 나무의자와 과일나무를 심은 상자 등으로 골목길 정취를 표현하기도 했고, 기존 돌담의 형태와 성질을 그대로 보전한 채 자연의 생명들을 동화적인 이미지로 구현하기도 했다. 이끼 낀 벽의 돌들은 하나둘 컬러풀한 옷을 입은 모습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동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찾는 재미도 있다. 주민들도 골목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골목은 동네 할머니들이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죽은 골목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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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마을 낭만골목에 그려진 장수를 상징하는 잉어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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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풍경속에 정겨움 가득한 골목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면 번듯한 현대식 건물이 나타난다. 이 동네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다. 어린이 전문 도서관 ‘담작은 도서관’이다. 3층 규모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구조여서 내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다. 2008년 문을 열었다. 번화한 시가지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오래된 작은 동네에 들어섰다는 점부터 특별하다. 동네 분위기와 어우러져서일까. 담작은 도서관은 다른 어떤 곳보다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담작은 도서관에서 내려오면 놀이터가 나타나고 골목 끝 벽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호랑이가 방긋 인사한다. 이 벽화는 ‘효자상 가는길’이라는 벽화다. 무미건조했던 시멘트벽에 호랑이를 비롯한 십이지신 캐릭터와 효자마을 풍경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사랑꽃·웃음꽃·행복 노래 가득한 효자마을이 되기를 염원하고, 방문객을 환영하고자 마을을 수호하는 호랑이와 십이지신 동물들을 그려놓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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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마을 낭만골목에 그려진 돌담을 그대로 활용한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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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돌아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폐가전제품을 활용한 ‘하늘지킴이 정크로봇’이나 나무로 만든 태권V 등이 나타난다. 태권V가 있는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정자가 보인다. 정자에 앉아 있노라면 맞은편 효자문경로당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새어나온다. 여느 경로당과 달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수 만든 물품을 걸어둔 게 눈에 띈다. 이 길 참 좋다. 풍경은 가난하지만 왠지 모른 정겨움이 느껴지는 그런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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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마을 낭만골목에 있는 춘천 대표 애니매이션 ‘구름빵’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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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 길=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춘천 IC에서 나와 공지로 국립박물관 방면 우측 도로를 따라가다 효명 1길에서 좌회전하면 효자마을 낭만골목이다.

△잠잘 곳= 춘천은 타 도시와 비교해 숙박업소가 다양하고 많은 편이다. 강원도청 인근에 춘천 세종호텔, 더베네치아스위트호텔, 춘천관광호텔이 있고, 방송국 인근에는 상상마당 춘천 스테이호텔 등이 있다. 강촌에는 엘리시안강촌리조트가 있다. 스키와 썰매 등을 즐기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다. 평일에는 새벽 2시, 금, 토요일과 공휴일에는 새벽 4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스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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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마을 낭만골목 벽에 그려진 반희언 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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