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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ESC] 하루가 또 하루를 버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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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올해 주목할 만한 작가’ 등으로 선정

패션지 등에서 화보 촬영도 해

돌이켜보니 난 늘 목표 따라 산 삶

대체로 이뤘지만 여전히 공허해

나와 비슷한 이들 고민 고백해 와

이 글은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응원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몇몇 신문과 잡지에서 인터뷰를 했다. 지난해에 낸 내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이 감사하게도 몇몇 매체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뽑혔고, 심지어 나를 올해의 주목할 만한 작가로 선정했다. 그로 인해 잡힌 인터뷰들이었다. (이건 자랑이다.) 나는 (신인 작가의 본분을 다하고자)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오는 대로 모든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다 받았다. 인터뷰가 잡힌 매체 중 몇몇은 패션지였고 아예 본격적으로 화보 촬영을 해야만 했다. 나도 잡지사에 근무했던 주제에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화보에 필요한 옷 공수를 위해 옷 사이즈를 묻는 에디터의 문자를 받고 나서야, 제정신이 들었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인생 최고 몸무게를 유지한 채, (아마도 스타일리스트들이 안간힘을 다해 구해왔을 희귀 사이즈의 옷을 입고) 포토그래퍼가 요구하는 온갖 포즈를 지으며 굴욕을 자처했다.(완성된 화보를 보고 친구들은 더없이 즐거워하며 나를 놀렸다.)

아무튼 그중 한 매체에서 이러한 질문을 했다.

“새해 목표가 무엇인가요?”

별로 대단치도 않은 질문에 나는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말 못해 죽은 귀신이 붙은 내게 그런 정적은 좀체 없는 일이었고, 나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잠깐의 정적 후 이내 무사히 에세이집을 출간하는 것, 혹은 다이어트라는 무난한 목표를 말하기는 했지만 그게 진짜 내 목표는 아니었다.

실은 아무런 목표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 언제나 목표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대입이 목표였으며, 대학생 때는 취업, 직장에 들어갔을 때는 퇴사(?), 그 후로는 등단과 출간 등등. 그런 소망이나 꿈, 목표가 있을 때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면, 삶의 조건을 하나씩 개선해 나가다 보면 다음 단계로 접어들 수 있으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어렴풋한 희망이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의 국면마다 녹록지 않은 상황이 닥칠 때마다, 더러는 실패를 할 때마다 조금씩 궤도를 수정해가면서 그저 열심히 달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삶에서 그런 가치관은 실제로 유효했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취직했을 때, 50번도 넘게 낙방한 후에 간신히 등단을 했을 때, 책을 냈을 때, 선망해왔던 문학상을 받았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으니까.

나는 원하던 것을 성취한 뒤의 삶, 혹은 간절히 바라던 것을 실패한 후 내가 내 삶을 가꿔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기술·가정 과목에서 (아직도 그 과목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생애주기라는 것을 배웠던 것이 새삼 떠오른다. 영아기와 유아기를 거쳐, 중년기와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나이에 따라서 여러 주기로 나눠 놓은 표였다. 각 생애주기별로 교육과 취업, 결혼과 출산 등이 차트처럼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는 표를 시험 기간에 달달 외웠던 기억이 있다. 딱히 교과서적으로 살아본 적도 없는 주제에 나는 언제부터인가 인생의 주기에 따라 끊임없이 과업들을 성취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어는 더 빨리,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것이 능사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나의 감정들과 삶의 다른 영역들은 한쪽에 접어두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앞으로 갈 줄만 알았고, 그 속도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고 믿었던 것일지도. 마치 신화나 종교처럼.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눈앞에 있는 아주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는 데도 버거운 삶을 살고 있었고, 한 치 앞의 미래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목표나 꿈은 커녕 오늘 해야만 하는 일을 얼른 마치고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만을 하기에 바빴다. 침대에 누워서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고 싶다. 그리고 기절하듯 잠들어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뭐 그런 생각들. 분리수거를 하거나 밀린 설거지를 하는 일, 빨래를 하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너무나도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얼마 전 뮤지션이자 작가인 요조님이 자신의 책에 이런 나의 삶을 너무나도 적확하게 표현한 구절을 써놓았다.

‘엄청 나태하면서 동시에 무섭게 성실한 이상한 사람이다. (중략) 박상영 작가님이 다니던 헬스클럽 관장님은 아마 박상영 작가님을 은연중에 되게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3년이 넘도록 새벽부터 일어나 글을 써서 소설책까지 내는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인데 헬스클럽 관장님이 과연 그 사실을 아실까?’

에세이집 원고 정리를 위해 처음으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썼던 원고를 모두 다 모아 보게 되었다. 앞서 낸 두 권의 소설집을 빼고도 두 권 정도 책을 더 묶을 수 있는 원고가 모여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4권의 책을 쓴 것이었다. 뿌듯하다기보다는 괜히 징글징글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 3년 동안 내가 써놓은 글들을 한 편 한 편 읽으며 몹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글은 마음의 거울이라던데 내 글 속에는 쓸데없이 우울하고 불필요하게 위악적이며, 초 단위의 감정 기복을 반복하는 감정조절 장애를 앓는 사람이 있었다. 그 어느 순간에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항상 현실이 아닌 과거의 어느 시점이나, 미래의 어느 시점만을 생각하고 사는 그런 사람. 맨몸으로 거울 앞에 선 것처럼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글들을 하나씩 꺼내 고치기 시작했다. 고쳐야만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전부이며, 내 밥벌이이니까.

추운 계절 탓인지 한동안 심하게 또 울증을 앓았다. 아무리 몸을 혹사해도 세 시간 이상 자기 힘들고, 중간에 계속 잠에서 깨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일과 중에는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고 온종일 멍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비싼 돈을 주고 보러 간 뮤지컬 공연장에서 조차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며, 신나는 록 음악 위주인 떠들썩한 공연이었음에도.) 공연이 끝났을 때 친구는 내가 좌석에 기대 잠들어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넌 공연비를 내고 온 게 아니라 호텔비를 낸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한번은 절친한 친구에게 이런 내 상황을,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상태를 털어놓았다. 친구는 예의 사려 깊은 말투로 내게 말해주었다.

“그래도 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 꿈을 이뤘잖아. 그건 정말 운이 좋은 일이야.”

“맞아 나는 꿈을 이뤘지. 나는…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실은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겠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마음은 미끄러져 내려갔다. 나는 때때로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어떤 순간은 나 자신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게을렀지만 언제나 마음속만큼은 전쟁터처럼 치열했다. 계단을 오르다가도 몇 번이고 숨을 골랐고, 에스엔에스(SNS)를 하다가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라 손이 떨리기도 했다. 그럴 일도 아닌데 자주 짜증을 냈고, 술을 마시면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잠들지 못한 새벽에는 이유 없이 서러운 기분이 들었고 개연성 없는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병원에 가 약물치료를 받고 상담 치료를 받아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지난 1년간 약의 양은 더 늘었고, 충동조절에 실패해 더 몸무게가 늘었으며, 상담을 받는 순간만큼은 잠깐 힘을 낼 수 있었으나, 혼자 남겨지면 더없이 공허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배달 음식을 시키고 그것에 의존하는 내 모습을 보며 얼마간은 혐오를 하고 또 얼마간은 이제, 편하게 잠들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이 에세이를 쓰고 연재한 후로, 나에게 부쩍 자신의 상태를 고백해 오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생각보다도 많은 내 또래의 친구들이 나처럼 정신적 문제를 겪으며, 더러는 약을 먹으며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는 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허와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요즘 나에게 퇴사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도 많이 늘었다. 악독한 상사와 엉망인 사내 문화, 매일 야근이 이어지며 주말조차 반납해야 하는 격무, 비전이 없는 산업 전망, 저마다 너무나도 합당한 퇴사의 사유가 있고 나는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이해가 간다. 왜 아니겠는가. 회사살이가 개집살이라는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온몸을 다해 체득한 진리였거늘. 나 역시 회사에 다닐 때는 목 디스크가 심해져서 점심시간마다 무통 주사를 맞으러 다니곤 했으며, 오후 3시만 되면 원인 모를 두통이며 미열이 찾아와 몸살기까지 느끼곤 했다. 퇴사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회사 쪽으로는 침도 안 뱉는 나다. 그러나 친구들이 원하는 대답(당장 때려치워!)을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는 못하는 요즘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며,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싫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억지로 만들어지는 루틴이 때로는 인간을 구원하기도 하니까.

현실이 현실을 살게 하고, 하루가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이 글은 매일 밤 굶고 자야지 결심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안간힘을 다해 행복해지려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길을 잃어버린 한 30대 사회인이, 꿈이나 목표 같은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당신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이며, 응원의 목소리이다. <끝>

글 박상영(작가), 일러스트 윤수훈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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