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회 필리버스터에서 한 의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이 과거 검사직 사표를 내려고 했을 때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가 훌륭한 검사이니 사표 제출을 막아 달라고 자신에게 전화했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윤석열 총장에 대한 섭섭함을 강하게 표현하였다. 과거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사지로 모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의 뜻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 조국 교수의 전화는 사적인 행위였으며 현재 윤석열 총장의 수사는 공적인 행위이므로 서로 별도의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라는 입법기관에서 공식 발언으로 기사화되었다는 것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선공후사(先公後私)라는 말이 있다.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뜻이며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렇지만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한다는 것은 요즘 시대에는 매우 가혹한 일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이제는 이런 선후의 의미보다는 구별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며, 선공후사는 공사 구분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공사 구분이 가장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는 분야는 바로 사회나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직자들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공직자가 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막상 현실에서는 무수히 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학연과 지연이 중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공사 간의 엄격한 구분이 오히려 그 사람을 융통성이 없다거나 냉정하고 몰인정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짙다는 점이다. 비리를 저지르는 공직자들의 머릿속에는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이익이 분리되지 못한 채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으며, 대개의 경우는 스스로 합리화를 부여함으로써 자기최면을 거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잘못된 것도 모르고 죄책감도 못 느끼며 결국은 자가당착에 빠진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인 오토 컨버그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자아발달 과정은 유아기에는 자신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함으로써 발달되지만, 성장이 진행될수록 자신과 타인을 구별함으로써 자아가 발달된다고 한다. 즉, 자아가 제대로 확립된 사람은 자신의 경계를 인식하고 개인적 문제와 타인의 문제를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지만, 자아가 분명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과 타인이 구별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공사 구분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공적인 일에 대해 개인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흔히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뇌의 기능에 있어서 편도체와 복내측전전두피질 사이의 정보 교환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최근 고려대 심리학과 김학진 교수팀의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연구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중국 전국시대 대표적 법가인 한비자는 왕에게 진언을 자주 하였는데, 특히 공사 구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는 나라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덕목은 선공후사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경자년 새해에는 국가 투명성 기구에서 발표하는 국가부패인식지수 전세계 45위라는 부끄러운 순위가 조금이나마 개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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