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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월요논단]역지사지,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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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yhchung@keit.re.kr

개인사로 견디기가 무척 어렵던 2019년이 지나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가족 한 명이 어린 천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결과를 수긍할 수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내 가족에게 일어나야 하는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문득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하늘로 간 천사가 이곳에서 자라났어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인간의 시각이고 세속 관점이다. 관점을 바꿔 절대자 시각에서 보니 오히려 가여운 사람은 여기에 남은 가족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보기 시작하자 진정한 이별을 할 수 있게 됐다. 어린 녀석이 인생의 교훈까지 주고 떠나다니 참 고얀 놈이다.

아내와 함께 결혼기념일을 맞아 대부해솔길을 걸었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인지 찬 겨울바다가 보고 싶었다. 말없이 한두 시간을 걷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 뭐 별것 있냐는 생각. 화내기 전에 한 번 더 웃어 주고, 비난하기 전에 한 번 더 격려해 주며,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이 순간에 충실하자는 '카르페 디엠'이 떠올랐다. 미래는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은 시간이고,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거나 어쩔 수 없는 미래 또는 과거에 매달려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카르페 디엠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한한 삶 속에서 충실하게 살자는 맥락은 동일하다. 과거 이집트 파라오는 왕이 되는 순간 자신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했다. 눈앞의 이익이나 세간의 평가에 연연하기보다는 역사에 남을 자신의 모습을 먼저 생각하는 의지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파라오를 거쳐 간 많은 인물은 업적을 남기고 떠났다.

우리에게 눈을 돌려보자. 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경제와 안보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총선도 치러야 하고 여러 사회 갈등도 해결해야 한다. 무엇부터 어떻게 풀어 가야 하는가. 최대 과제는 문제의 본질은 해결하지 못하면서 그저 열심히 흉내만 내는 '놀이'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정치인은 정파놀이, 관료는 규제놀이, 가진 자는 갑질놀이, 교수는 논문놀이에 각각 빠져 있어서 그럴듯한 명분 아래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어느 교수의 지적에 공감한다. 백마를 타고 나타난 초인이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 주지는 않을 것 같아 답답함은 더 커진다.

무엇보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필요한 때다.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진정한 소통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개인 성격이든 공공 성격이든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수긍이 가능해진다. 앞에서 언급한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정신도 기억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지 말고 미래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갈라진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이를 이루기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

한순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극한 정성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태산이 높아질 수 있게 된 것은 한 줌의 토양을 사양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하해가 깊어질 수 있게 된 것은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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