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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이재용 재판부 “삼성 준법감시위 활동 양형 고려"... 특검 "재벌 봐주기냐"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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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준법감시위, 실질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에 고려"
특검, 정면 반발… "美 제도, 국내 실효성 있을지 우려"
손경식 CJ 회장 증인 불출석… 李측 증인 신청 철회

조선일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오후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고법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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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17일 삼성그룹이 최근 설치한 ‘준법감시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잘 운영되는지를 살펴 이 부회장의 형량에 반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 부회장에 대해 대법원이 추가 뇌물을 인정해 실형(實刑) 재선고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나온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입장이어서 주목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즉각 "재벌 혁신 없는 준법감시제도는 봐주기에 불과하다"며 정면 반발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이날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4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활용해 삼성의 약속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점검하려 한다"고 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지난 9일 출범했다. 승계와 노조 문제 등을 포함해 회사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를 직접 신고받아 조사하는 준법 경영 감시활동 기구다. 삼성 측은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가 앞선 재판에서 "삼성그룹에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감시 제도가 작동했다면 이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기업 내부 준법 감시제도’ 등을 주문한 뒤 준법감시위를 만들었다.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대법관에 임명된 대표적인 진보 성향 법조인인 김지형 전 대법관이 맡았다.

◇재판부 "삼성, 준법감시 약속 지켜지면 형량에 반영"
이날 재판에서 변호인 측은 삼성 준법감시위의 운영 방식 등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기업 범죄 재판에서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시행 여부는 미국 연방법원이 정한 양형 사유 중 하나"라며 "미국 연방법원은 2002~2016년 530개 기업에 대해 ‘실효적 준법감시제도’의 시행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준법감시제도는 기업과 기업 임직원들이 법률상 명시된 금지사항을 준수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조치다. 형법적 관점에서는 기업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평가된다.

재판부는 "이 제도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며 "삼성그룹이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을 했으나, 약속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엄격하고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발언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적으로 운영되는지를 따져보고, 이를 이 부회장 등의 형량에 반영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검증 방법으로 형사소송법상 ‘전문심리위원’제도를 거론했다. 독립적인 제3의 전문가를 통해 삼성 내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시행되는지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3명의 위원으로 위원단을 꾸리고, 그 가운데 한 명으로는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도 했다.

이 재판부는 최근 형사재판에서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해 주목을 받았다. 치유법원은 사건의 유·무죄에 따라 단순히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범 방지를 위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특검팀 "재벌 혁신 없는 준법감시제도는 봐주기"
특검팀은 즉각 재판부의 구상에 반대 의견을 냈다.

특검팀은 "대통령과 최고 재벌총수 간의 사건에 제도 수립이 어떤 영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삼성과 같은 거대 조직이 없는 미국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극히 우려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재벌 혁신 없는 준법감시제도는 봐주기에 불과하다"며 "재벌체제 혁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준법감시제도 하나만으로 논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특검팀은 "외부에서는 재판부의 명령이 ‘명분 쌓기’ 아니냐는 분위기도 있다"며 "회복적 사법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 법조계 "이재용 집행유예 선고 염두에 둔 것 아니냐"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석방됐다. 하지만 대법원이 2심(36억원)보다 50억원 많은 86억원을 뇌물·횡령액으로 판단하면서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실형이 선고될지가 최대 관심사다.

현행법상 50억원 이상 횡령은 법정형이 최소 징역 5년 이상이어서 재판부가 재량으로 형을 낮춰주지 않으면 실형 선고로 재수감될 수도 있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 징역형에 대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양형기준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경우 횡령금 반환에 따른 피해 회복이나 적극적인 경영구조 개선 등 진지한 반성 등을 이유로 한 감형이 가능하다. 직권으로 형량의 반까지 깎는 재판부의 '작량감경'도 있을 수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앞선 재판에서 "향후 정치권력자가 요구하면 또 뇌물을 줄 것인가, 요구를 거절하려면 삼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바 있다. 국정농단 같은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실효적이고 실질적인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를 놓고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를 염두에 두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국정농단 사건에서 뇌물을 준 기업들을 '수동적 피해자'로 볼 수는 없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라면서 "이미 한 번 법원이 풀어준 이 부회장을 재수감하는 것도, 그렇다고 솜방망이 처벌 논란을 자초하는 것도 비합리적인 만큼 긍정적 양형 요소를 최대한 모으는 게 한 방편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일부 시민들, 재판 끝나자 이 부회장에 "감옥 가라" 고성
이날 재판에서는 손경식 CJ 회장의 증인 신문이 예정돼 있었으나 그가 출석하지 않아 불발됐다. 손 회장은 일본 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이 부회장 측은 증인 신청을 철회했다. 이 부회장 측은 "경제계 원로로 대통령과 기업의 관계를 증언하기에 최적이라 생각했지만, 불출석 사유서를 보면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시는 것 같다"며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로 이 법원에 모시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재판이 끝난 이후 법원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일부 시민들이 재판을 마친 뒤 차량으로 향하는 이 부회장을 향해 달려들면서 경호원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들은 이 부회장에게 "감옥으로 가라" "사과하라"고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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