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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5페소 역사속으로"…살인적 인플레에 아르헨 전격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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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 아르헨티나 중앙은행(BC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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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경제대국 아르헨티나에서 이달 말 5페소 짜리 지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연간 물가상승률이 50%선을 달리면서 소액 화폐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현지 물가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환율로만 따지면 아르헨티나 5페소는 우리 돈 약 96원이다.

1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중앙은행(BCRA)은 "이달 31일 부로 5페소짜리 지폐 유통을 공식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미 시장에 풀려있는 5페소화가 회수되는 시간을 고려해 시민들이나 관광객이 시중 은행에서 다른 단위 동전 등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이 지정한 조정 기간은 다음 달 2월 28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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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페소화 지폐는 지난해 2페소에 이어 두번째로 아르헨티나 시장에서 종적을 감추게 됐다. `신흥국 금융위기설`이 불거진 지난 2018년 4월 부로 달러 대비 페소화 가치가 추락하고 물가가 치솟자 정부는 소액 단위 화폐 유통 중단 방안을 검토해왔다. [사진 출처 = 아르헨티나 중앙은행(BC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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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은 5페소화 지폐 사용 중단 배경에 대해 화폐가치 추락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 2018년 초까지만 해도 환율이 달러당 20페소화였지만 '신흥국 금융위기설'이 돌기 시작한 같은 해 4월부로 페소화 가치가 바닥을 치면서 올해 1월 들어 외환시장에서는 달러당 63페소인 상황이 됐다.

여기에 더해 지난 해 12월 10일부로 취임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환율 안정을 위해 달러 거래에 최대 30%까지 외환 거래세를 매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세금까지 포함한 공식 환율은 달러당 81.86페소에 이른다고 EFE통신은 전했다.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페소화 가치가 떨어짐과 동시에 현지에서도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앞서 아르헨티나 통계청(INDEC)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물가 상승률 잠정치는 53.8%에 이른다.

라나시온과 인포바에 등 현지 언론은 "5페소가 인플레 희생양이 됐다"면서 "이제는 수집가들이나 모으는 전시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르헨티나 경제난 탓에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화폐는 5페소가 처음은 아니다. 앞서 페소화 추락이 시작된 2018년에 2페소화 지폐가 우선 퇴출당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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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생활고를 겪는 예술인들이 산텔모(San Telmo) 일요 시장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 =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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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반응은 제각각이다. 나중에 역사적 값어치가 뛸 것을 고려해 지폐 5페소를 수집용으로 모으겠다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끄는 비영리기구(NGO) '아시엔도 리오'는 다음 달 28일까지 아르헨티나 주요 도시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품 경매 행사 재원 마련을 위한 '5페소 기부' 캠페인을 열기로 했다.

5페소는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 역사가 담긴 상징적 지폐다. 5페소는 지난 1992년, 페소화가 복원되던 당시 등장했다.

에바 페론이 대표하는 아르헨티나 특유의 포퓰리즘 '페로니즘' 정부가 무너진 후 1970년 대 아르헨티나에서는 군부 정권이 득세했다. 이후 1980년대 당시 라울 알폰신 대통령(임기 1983~1989년)이 군부 정권 청산 후 첫 민주 정부를 출범시켰는데 알폰신 대통령은 군부가 쌓아온 막대한 외채에 대응하자는 차원에서 원래 페소화 대신 '아우스트랄'이라는 새 화폐단위를 도입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우스트랄화 도입 이후 연간 물가상승률이 10~20%를 오가는 식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하다가 알폰신 대통령 임기 말인 1989년에는 5000%에 달했다. 대통령은 오히려 경제 위기를 부채질했다는 비난 속에 임기를 6개월 남기고 정권을 내줬다.

이후 등장한 '신(新)자유주의 신봉자'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임기 1989~1999년)이 페소화를 복원하는 작업에 착수한 결과 1992년 등장한 것이 5페소짜리 지폐다. 메넴 정부는 미국 달러화 대 페소화 환율을 1대1로 고정시키기 위해 1992년 1월 1일 페소화를 복귀시켰고 기존 10000아우스트랄을 1페소(당시 고정환율 상 1달러=1페소)로 정했다.

5페소는 '데뷔'초인 1992년 소고기 1키로 혹은 가솔린 5리터를 살 수 있는 돈이었지만 지금은 또 다시 불어닥친 경제 위기 탓에 단추 하나 정도를 겨우 살 정도로 화폐가치가 폭락했다.

사용 중단된 화폐를 그냥 쓰려는 시민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벌금이 따른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 화폐보관국의 페르난도 페리티코네 국장은 EFE통신과 인터뷰에서 "혹여 정부가 디노미네이션(화폐 금액단위 축소)을 단행하면 5페소가 나중에는 큰 돈이 될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부여잡은 사람들이 눈에 띄지만 일단 이 돈은 이달 까지만 쓸모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2페소 지폐가 퇴출되던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45개 상점이 유예기간 이후에도 2페소지폐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총45만5000페소(당시 7200달러·약 830여 만원) 벌금을 물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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