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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정소영의 아는 패션]트렌드가 없는 게 트렌드…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합리적 개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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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메가 트렌드가 사라진 패션계’라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몇 년 전에 비하면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트렌드를 쉽게 꼽기 힘들다. 산발적인 트렌드들은 존재하나, 어떤 패션의 흐름이 전체 트렌드를 지배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주된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인 셈이다. 요즘 세대는 맹목적으로 유행을 좇던 지난 세대와 다른 성향을 보인다. 세대의 문화적 변화는 세상의 흐름과 연결된다.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개인 의사는 등한시하던 한국적 전체주의는 사그라들고 개개인의 취향을 받아들이는 다양성 존중의 문화가 번지고 있다. 이런 사회상은 패션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경향신문

신발업체 반스의 ‘반스하우스’.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은 이 공간에서 고객들은 쇼핑 외에도 각종 ‘놀이’를 즐긴다. 반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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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패션을 소비하는 세대는 자신의 생각을 옷 입기에 투영한다. 소비는 아무렇게나,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브랜드를, 이 제품을 왜 구매해야 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이유와 자기만족이 있어야 한다. 이런 명분을 제시하기 위해 브랜드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 수요를 충족시키는 첫 번째 대안은 개인별 맞춤이다.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은 얼마 전 3D 프린팅 맞춤 마스크팩을 개발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얼굴 크기와 피부 특성 등을 반영해 개개인에게 꼭 맞는 하이드로겔 마스크팩을 만드는 기술이 집약됐다. 캐주얼 브랜드 헤지스는 LG전자의 인공지능 브랜드 씽큐(ThinQ)의 서비스 중 하나인 씽큐 핏(ThinQ Fit) 프로그램과 손잡고 가상 착장 기술을 선보였다. 3D 카메라를 활용해 사용자가 옷을 입은 상태에서도 신체 치수를 정확히 측정해 매우 흡사한 외형의 아바타를 만든다. 이 아바타를 이용하면 직접 입어보는 번거로움 없이 다양한 스타일과 치수의 제품을 고를 수 있다. 이 같은 정보기술은 2년 전 글로벌 온라인패션 플랫폼 파페치(fafetch)에서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미래의 매장(Store of the future)’이라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고객이 매장에 발을 들여놓는 동시에 스마트폰을 통해 고객의 구매 이력과 온라인 위시리스트(희망 구매 목록) 등의 정보를 판매직원에게 바로 전달시킨다. 직접 대면해 주문하지 않아도 고객별 맞춤 서비스가 가능해지도록 한 것이다. 또한 고객이 고른 옷의 옷걸이에 저장된 정보가 자동으로 고객의 스마트폰에 전달되고, 스마트 거울을 통해 다양한 치수와 색상의 옷을 맞춰볼 수 있도록 했다.

온라인 쇼핑이 강세라지만, 요즘 소비 세대는 직접 눈으로 보고 입어보는 수고로움에 불평하지 않는다. 브랜드 이미지나 특정 상품을 알리기 위해 단기간 여는 ‘팝업스토어’는 그래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체험형 프로그램도 브랜드에서 즐겨 활용하는 마케팅 노하우다. 고객이 신발 한 켤레를 사면 한 켤레를 기부하는 캠페인으로 잘 알려진 신발 브랜드 탐스(Toms)는 전 세계 다수 매장에 VR 헤드셋을 비치해 각지에 기부한 신발이 현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탐스는 최근 수익 악화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이 캠페인은 지속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는 한편 고객에게는 왜 이 제품을 꼭 사야만 하는지에 대한 타당한 명분을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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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업체 반스는 브랜드 슬로건인 ‘오프 더 월(Off the Wall)’에 딱 맞는 ‘놀이’를 런던의 반스하우스에서 벌인다. 이곳에서 고객들은 영화와 라이브 음악을 즐기고 쇼핑과 식사를 하며 자전거와 스케이트보드도 탄다. 놀면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느끼고 이해하라는 취지다. 기능성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라면 이런 마케팅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LA를 기반으로 한 요가복 브랜드 알로 요가(Alo Yoga)와 아웃도어 보이스(Outdoor Voices)는 별도의 요가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캐나다의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Lululemon)은 매장 안에서 요가와 명상 수업을 진행해 소비자들이 직접 몸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공유하도록 한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아이더는 등산, 트레킹, 낚시, 클라이밍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경험하는 아이더 클래스를 열어 수시로 체험단을 모집한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피그램은 ‘올모스트 홈’이란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에피그램의 정서가 담긴 지역인 고창에서 지내며 브랜드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밀레니얼이라 불리는 현 소비 세대들의 ‘현명한’ 소비는 패션 트렌드와 마케팅 방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지금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소비정신을 장착한 ‘개취(개인 취향) 존중’ 패션의 시대다.

정소영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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