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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Science] 국내 쌓인 1만6천t 사용후 핵연료…저장시설 포화 `발등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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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원자력발전소 운영을 시작한 지 60여 년이 흘렀다. 원전은 현존하는 전력 생산 에너지원 중 효율성과 경제성이 가장 높다. 그런데 완벽해 보이는 원전에도 약점은 있다. 바로 원전을 돌리면 필연적으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 등 방사성 폐기물이다. 방사성 폐기물은 방사능을 가진 방사성 핵종이 포함된 물질이다. 우라늄(U)-235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는 자연 상태에서 안정적인 원소들과 달리 원자핵이 무겁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안정된 상태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원자핵 안에 있는 입자와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붕괴한다.

이때 나오는 입자나 빛, 전파가 방사선이다. 방사성 폐기물은 고준위와 중·저준위로 나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권고에 따라 열 발생률이 ㎥당 2㎾ 이상이고 반감기(방사능이 절반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가 20년 이상인 핵종의 방사능 농도가 g당 4000Bq(베크렐·1Bq은 1초에 1개의 원자핵이 붕괴할 때 방출되는 방사능의 강도) 이상이면 고준위 폐기물로 분류한다. 상대적으로 열 발생률 또는 방사능 농도가 이보다 낮으면 중·저준위 폐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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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는 대표적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다. 원전은 핵연료에 포함된 우라늄-235가 중성자를 흡수해 핵분열 반응을 일으킬 때 나오는 열에너지로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천연 우라늄에는 우라늄-235가 0.7%가량 포함돼 있다. 나머지는 핵분열을 하지 않는 안정적인 원소인 우라늄-238이다.

중수로형 원전은 핵연료로 천연 우라늄을 쓰고 경수로형 원전은 우라늄-235의 함유량을 3~5% 정도로 높인 농축 우라늄을 사용한다. 때문에 연료가 되는 우라늄-235 농도가 낮은 천연 우라늄을 쓰는 중수로형 원전은 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경수로형 원전에 비해 핵연료를 더 자주 교체해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수로형 핵연료 1다발은 4년 정도 사용 가능한 반면 중수로형 핵연료 1다발은 9개월이면 소모된다. 그만큼 중수로형 원전에서 사용 후 핵연료가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경수로형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 후 핵연료는 연간 1기당 20t 수준인데, 중수로형 원전에서는 1기당 90t이 발생한다. 국내 유일한 가압 중수로인 월성 원전에서 상대적으로 사용 후 핵연료가 많이 나오는 이유다.

원자로에서 꺼낸 섭씨 300도의 뜨거운 사용 후 핵연료는 우선 내벽을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원전 내 콘크리트 구조물 형태의 습식저장시설(임시저장 수조)에 5~6년간 보관해 냉각 과정을 거친다. 원자로에서 꺼낸 4m 길이의 사용 후 핵연료(폐연료봉)를 바로 옆 12m 깊이의 수조에 그대로 담가 25~35도 물로 열을 식히는 것이다. 수조의 스테인리스강에는 중성자를 흡수·제거하는 붕소도 함유돼 있다. 수조의 물은 자연적으로 증발되는 미량만 계속 보충해 주는 식으로 관리한다. 어느 정도 냉각이 된 사용 후 핵연료는 콘트리트 등 차폐체로 감싸 공기로 식히는 건식저장시설로 옮긴다. 콘크리트 사일로는 사용 후 핵연료를 중심으로 두꺼운 콘크리트가 둘러싸인 원통형 구조다. 조밀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는 콘크리트 구조물 내에 사용 후 핵연료를 담은 차폐 실린더 용기를 일정 간격으로 세워 놓은 구조다. 건식저장시설에서 열과 방사능이 어느 정도 자연적으로 떨어질 때까지 40~60년간 보관한 뒤 땅속에 묻거나 재처리를 하는 시설로 옮기게 된다. 지금까지 국내 원전에서 발생한 1만6000t의 사용 후 핵연료는 모두 원전 내 습식·건식저장시설에 임시 보관 중이다. 사용 후 핵연료를 더 이상 보관할 공간이 없으면 원전을 가동할 수 없기 때문에 충분한 저장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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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EA에 따르면 사용 후 핵연료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34개국으로 이 중 국토가 넓고 지반 구조가 안정적인 미국, 스웨덴, 캐나다 등 7개 국가는 사용 후 핵연료를 단순히 땅에 매립하는 직접 처분 방식을 채택했다. 러시아, 일본 등 4개 국가는 방사성 핵종의 독성을 낮춘 뒤 처분하는 재처리 후 처분 방식을 택했다. 한국 등 나머지 국가들은 사용 후 핵연료의 영구 처분 방식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한국은 2016년 7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국가관리 기본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면서 이 기본계획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에 들어갔고 수년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지난달 영구 정지 결정된 월성 1호기를 제외한 월성 원전의 사용 후 핵연료 저장률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93%를 넘어섰다. 한울 원전(저장률 80.2%)과 고리 원전(78.1%)은 각각 2026년과 2027년 기존 사용 후 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한빛 원전(71.4%) 역시 2028년이면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꽉 차게 된다. 김경수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장(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국이 더 이상 사용 후 핵연료 처분을 미룰 수 없는 시점이 2053년"이라며 "특히 월성 원전의 사용 후 핵연료 콘크리트 건식저장시설(사일로)는 2041년 허가된 수명이 종료되는 만큼 지금부터 사용 후 핵연료 처분을 위한 기술적, 법·제도적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사용 후 핵연료를 제외하면 원자로 속 제어봉과 노심 내부 구조물, 액체 폐기물 등 원전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은 대부분 중·저준위 폐기물이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병원이나 연구기관, 산업체 등 방사선을 이용하는 기관에서도 발생한다. IAEA에 따르면 1100㎿급 원전 1기를 해체할 때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은 약 6200t로 전체 발생 폐기물의 3.4%에 수준인데 모두 중·저준위 폐기물(중준위 200t, 저준위 3000t, 극저준위 3000t)이어서 처리가 어렵지 않다.

■ 탈원전 추진하는 정부, 사용후 핵연료 처리 신기술에 딴지
부피 20분의 1로 줄이는
재처리기술 '파이로프로세싱'
韓이 관련기술 앞서있는데도
정부, 관련예산 60%나 삭감

사용 후 핵연료를 직접 매립 방식으로 영구 처분하려면 지하 500m 이상 깊이의 심부 지층에 묻어야 한다. 방사성이 누출되지 않도록 차폐체까지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넓은 땅과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처럼 상대적으로 땅덩어리가 좁은 국가에서는 사용 후 핵연료의 독성과 부피 그리고 처분 면적을 줄이기 위해 사용 후 핵연료를 한 번 재처리한 뒤 영구처분하는 '재처리 후 처분' 방식이 적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 20여 년간 6800억원을 들여 차세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SFR) 기술 개발에 매달려 왔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 후 핵연료에 포함된 고독성의 방사성 핵종을 분리해 차세대 원자로인 SFR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재처리하는 기술인데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ANL)가 처음 개발했다.

파이로프로세싱 재처리 과정을 거치면 사용 후 핵연료 부피를 20분의 1, 방사능을 100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또 사용 후 핵연료 재사용을 통해 80년 후 고갈이 예상되는 우라늄 사용률을 94~96%로 끌어올릴 수 있어 경제적이다. 장윤일 ANL 석학연구원은 "미국은 땅이 워낙 넓어 직접 처분 방식을 택했지만 땅이 작은 한국에 파이로프로세싱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는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장점이 많은 기술로 개발을 서둘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탈원전을 추진하는 문재인정부 들어 파이로프로세싱 사업 관련 예산은 60%나 삭감된 상태다. 올해까지 진행되는 3단계 사업은 SFR 실증로 건설과 운영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였는데 실증로 설계비 등 다음 단계를 위한 기초 연구비가 모두 빠지면서 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파이로프로세싱·SFR이 원전 가동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탈원전 정책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발을 빼는 것 아니냐는 게 원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은 2012년부터 세계에서 유일하게 파이로프로세싱 기술 개발에 성공한 ANL과 공동 연구를 통해 관련 기술을 확보해 왔다. SFR을 개발 중인 다른 나라는 아직 파이로프로세싱 기술까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스스로 기술을 포기할 경우 경쟁국에 우위를 뺏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는 2년 전 800㎿급 SFR 운영을 시작했고, 인도와 중국도 600㎿급 SFR를 구축 중이다.

일본은 재래식 재처리 방식(퓨렉스)으로 사용 후 핵연료를 처분하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보다 효율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연간 사용 후 핵연료 800t을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 250억달러(약 29조원)에 달한다. 반면 파이로프로세싱은 이런 재처리 비용을 15분의 1로 대폭 낮출 수 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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