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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이탈리아 연정 사법제도 개혁 놓고 분열…일부 야권과 손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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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연정 출범 이후 의회 표결에서 처음 단일대오 무너져

연정 위기 고조 속 오성운동선 또 탈당자 나와…한달새 5번째

연합뉴스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사법개혁을 주도하는 알폰소 보나페데 법무장관. [EPA=연합뉴스]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내홍이 심화하고 있다.

연정의 주요 축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 소속 의원들의 잇따른 이탈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이번에는 사법 시스템 개혁을 두고 연정 내 갈등이 폭발했다.

16일(현지시간) ANSA 통신 등에 따르면 여권으로 분류되는 이탈리아 비바(IV)가 연정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에 반기를 들고 우파 야권과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IV는 지난 9월 오성운동과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이 새 연정을 구성한 직후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을 탈당하고서 만든 중도 정당이다.

렌치 전 총리와 함께 민주당을 떠난 테레사 벨라노바 농업장관 등 일부 내각 인사가 속해 있어 오성운동, 민주당과 더불어 연정의 세 축을 이루는 정당이다.

렌치 전 총리는 신당을 만들며 연정을 계속 지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에도 여러 정책에서 오성운동-민주당과 의견을 달리하며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

특히 공소시효 제도 개선을 핵심으로 하는 사법개혁에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며 연정의 토대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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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하원의사당 내부 모습. [EPA=연합뉴스]



오성운동 소속의 알폰소 보나페데 법무장관은 범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에 법원 판결이 나오도록 하는 사법개혁안을 의회에 제출해 작년 말 통과시켰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재판 절차가 늘어지기로 유명하다. 1심부터 최종심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다른 나라의 1천200배에 이른다고 유럽인권재판소가 지적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을 피해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18년에만 이런 케이스가 12만건 있었다고 한다. 좋은 변호사를 써 어떻게든 재판을 더디게 만드는 게 이탈리아 범죄자의 지상목표가 된 지 오래다.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해 이런 사법적 구멍을 메우자는 게 보나페데 개혁안의 취지다.

이 안은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나 극우정당 동맹을 중심으로 한 우파연맹은 끊임없이 이 개혁안을 중도 폐기하려 시도해왔다.

개혁안이 사법 안정성을 저해할뿐더러 재판 기간을 오히려 늘릴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15일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설립한 전진이탈리아(FI)가 이를 뒤집는 법안을 제출해 표결까지 갔다가 오성운동과 민주당이 가까스로 이를 저지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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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정당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왼쪽)와 보나페데 장관. [EPA=연합뉴스]



특히 IV는 이 표결에서 우파 연합에 가담해 연정 내부의 지탄을 받았다.

연정 파트너 사이에 정책 사안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더라도 의회 표결이 진행되면 힘을 모으는 게 관례였는데 IV가 연정 출범 이후 처음으로 표결에서 단일대오를 이탈한 것이다.

현지 정계에서는 IV의 이번 반란이 향후 연정 와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까지 내놓고 있다.

개혁안을 발의한 보나페데 장관은 이와 관련해 "IV는 개혁안을 저지하고자 야권과 손을 잡음으로써 연정 내 고립을 자초했다"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IV는 연정에 등을 돌린 게 아니라 '법 원칙'을 지키려는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렌치 전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는 극우 정치인 마테오 살비니의 집권을 저지하고자 연정을 구성한 것이며, 오성운동처럼 변질하길 원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연정 정책이 우리 가치와 맞지 않으면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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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왼쪽)와 귓속말을 나누는 보나페데 장관. [EPA=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오성운동에서 또 한 명의 상원의원이 당을 떠나면서 연정 붕괴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루이지 디 마르초 상원의원은 16일 당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이 측근들에 너무 많은 권력을 몰아주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하며 전격적으로 탈당계를 냈다.

최근 한 달 새 오성운동의 5번째 탈당 인사다. 이에 따라 전체 321석인 상원에서 연정이 차지하는 의석수는 과반(161석)에 살짝 못 미치는 159석으로 내려앉았다.

연정으로선 과반 유지를 위해 소수 정당의 지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부패한 기성정치 타파를 기치로 내걸고 2009년 창당한 오성운동은 2018년 3월 총선에서 33%의 득표율을 올리며 제1당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후 기존 정당들과 별다른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현재는 지지율이 15% 안팎까지 추락했고, 이에 대한 책임론과 맞물려 지도부에 대한 비토가 쏟아지며 내분에 휩싸인 상태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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