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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한·미가 협의해야" VS "한국이 정할 사안" 의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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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남북협력사업 추진 구상에 / 해리 해리스 美대사 "한미 워킹그룹서 다뤄야" / 靑 "정부 결정 사안…해리스 발언 부적절"

“향후 (유엔의 대북한)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다루는 것이 낫다.”(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남북 협력 관련 부분은 우리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다.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 발언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부적절하다.”(청와대 관계자)

해리스 대사와 문재인정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그리고 친여 성향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해리스 대사의 언행에 불만을 표시하곤 했어도 청와대가 직접 나서 해리스 대사를 비판한 적은 없었다. 문재인정부 들어 한·미 동맹이 위태롭다고 하더니 심각한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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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예방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와 악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청와대는 17일 해리스 대사의 전날 발언에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문 대통령이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별 관광 등 한국 정부의 독자적 남북협력 추진 구상을 밝힌 것에 대해 해리스 대사가 외신 간담회에서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다루는 게 낫다”며 한·미 간 긴밀한 협의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과는 항시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협의를 하고 있다”며 “정부는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과 조속한 미·북· 대화를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남북 협력 관련 부분은 우리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해리스 대사의 발언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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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지난 1일 트위터에 올린 ‘2020년에 해야 할 일 10가지’ 목록. 한·미 동맹을 더욱 걷건하게 만드는 일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해리스 대사 트위터 캡처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려면 전날 해리스 대사의 발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향후 (유엔의 대북한)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를 두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독자적인 공간을 적극적으로 넓혀가겠다는 문 대통령 측 구상에 공개적으로 ‘견제구’를 날린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는 유엔 등 국제사회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개발 등을 이유로 북한을 제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관광객들이 북한을 방문하면 사실상 제재가 풀리는 효과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방문하는 관광객 중에는 아무래도 반공의식이 허약한 사람이 많을 텐데, 이들이 ‘민족’이니 ‘동포’니 하는 온정주의적 감상에 사로잡혀 북측에 ‘선물’을 안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리스 대사는 “제재 하에서도 관광은 허용된다”면서도 “다만 북한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반입하는 짐에 포함된 물건 일부가 제재에 어긋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외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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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뉴시스


한편 이번 간담회에선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도 도마 위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에 강권으로 한국을 지배한 조선총독부의 총독들 가운데 콧수염을 기른 이가 많았는데,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이 일제 총독을 연상시킨다는 여론이 국내에 많다는 점이 화제가 된 것이다.

해리스 대사는 “콧수염을 깎을 생각이 없느냐”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내가 콧수염을 기른 이유는 해군에서 은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며 “콧수염을 깎을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해리스 대사는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한국, 일본 등을 방어하는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대장)까지 지내고 퇴역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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