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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책과 삶]다시 청춘이라면, 사랑을 포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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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금희 지음

창비 | 216쪽 | 1만4000원

경향신문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소설 <천진 시절>을 읽으면서 문득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에 나오는 이 글귀가 떠올랐다. 인생의 푸른 봄을 살았으나 빛깔도 온기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절. <천진 시절>은 중국 동북 출신의 마흔세 살 여성 ‘상아’의 20년 전과 지금의 이야기다.

상아에겐 고향을 함께 떠나온 남자가 있었다. 소설 ‘소나기’에 나올 법한 순수한 소년 때부터 봐 왔던 그는 유능하지 않았으나 따스했고 편안했다.

취업을 이유로 천진으로 ‘탈향’을 하고, 둘만의 삶이 시작됐지만 그녀는 두려웠다.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유일하게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낯익은 상대,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정숙은 그때 만난 언니다. 그 역시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고 일터가 같았던 청춘남녀 넷은 그렇게 한 시절을 공유했다. 사랑하고, 사랑하지만 헤어지고….

“언니, 언니는 후회 같은 거 해 본 적 있어요? 만약이라는 게 없다는 거 아는데, 그래도 다시 한번 그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떨 것 같아요?”

상아는 물으면서 생각했다. 부질없는 질문이라고. 20년 만에 만난 정숙은 답했다. “아니, 다시 한번 선택하라고 해도 그렇게 살았을 거야.” 고향을 떠나 개방 도시의 현란한 삶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야 했던 그녀들이었다. ‘더 나은 삶’을 꿈꿨던 죄. 아니 꿈꾼 대가. 그게 그 시공간에서의 청춘이었다.

책은 1990년대 개혁·개방 시대를 맞이한 중국의 생활상과 그 속에서의 조선족을 내밀하게 그려냈다는 의미를 들추지 않아도, 청춘들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달콤 쌉싸래한 소설이다.

임지영 기자 iimi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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