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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전희상의 런던 책갈피]캐머런을 몰락시킨 브렉시트 국민투표…정치적 책략이었나 고도의 전략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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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국 총리의 뒤늦은 고백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에서 브렉시트 관련 논쟁이 최고조에 달하던 지난해 가을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회고록 <공식 입장(For the Record)>을 출간했다.

경향신문

캐머런은 대학 졸업 직후 영국 보수당의 정책 관련 부서에 취업해 정치에 입문했으며 2001년 의회에 입성했다. 2005년에는 당 대표가 됐고 2010년 43세의 나이에 자유민주당과의 연정을 통해 총리에 취임했다. 2015년에는 서민 대중에게 큰 타격을 입힌 긴축정책 때문에 정권을 내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8년 만에 보수당 단독정부를 출범시켰다.

캐머런 정치인생의 “가장 달콤한 승리”는 안타깝게도 그의 정치적 몰락으로 이어지고 만다. 선거 전 캐머런은 유럽연합(EU) 잔류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지낸 도날트 투스크의 증언에 따르면 캐머런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연정이 계속되고 자유민주당의 반대로 국민투표 시행이 어려울 거라 보았다. 이 공약이 당내 정파 관리와 총선 승리를 위한 술수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캐머런은 곧장 사임했지만 그후에도 정치적, 정파적 이득을 위해 국가의 백년대계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EU 잔류파로부터 조롱과 비난을 받아왔다. 다른 한편 탈퇴파에게 캐머런은 런던을 중심으로 한 친EU 메트로폴리탄 엘리트를 대표하는 인물로 공적 취급을 받았다. 브렉시트 관련 논쟁이 격화되는 와중에도 그가 오랫동안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EU 탈퇴파를 대표했던 라이벌 보리스 존슨이 총리직을 승계한 후에야 캐머런은 회고록을 통해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상세히 밝혔다. 무엇보다 그는 국민투표가 정치적 책략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적 결정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 골자는 이렇다. (1) EU는 창설 정신에서 멀어져 점차 경제공동체에서 정치공동체로 변질돼 갔다. (2) 영국은 유럽 대륙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그 일부가 될 수 없으며 이러한 변화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 (3) 이 문제는 지난 수십년 동안 영국 내에 쉽게 봉합할 수 없는 분열을 야기했고 국민투표를 제외한 별다른 정치적 해결책은 없다.

경향신문

캐머런의 주장대로 유럽 문제가 언젠가 터질 거대한 시한폭탄이었다면 국민투표는 정치생명을 건 지도자의 담대하고 고독한 결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캐머런은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쇠락의 길에 들어서는 경우 책임의 많은 부분을 떠안아야 하지만 성공의 과실은 공유할 수 없다. 전후 사정에 대한 세밀한 기록을 남겨 역사적 평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브렉시트 외에도 인상적인 내용이 많다. 캐머런은 총리 재임 중 신뢰관계에 있던 언론인과 매달 현안을 논의했는데 이를 녹음해서 회고록의 기초로 활용했다. 우리 정치인들도 정확하고 생동감 있는 기록을 위해 고려해 볼 만한 방식이다. 야당 대표 시절 첫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아들의 삶과 죽음을 담담한 문체로 기록했지만 슬픔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어 읽는 이의 눈시울을 적신다.

전희상 |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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