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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책과 미래] 세습 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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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세습 중산층'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글항아리 펴냄)에서부터다. 피케티는 21세기에 '세습 중산층' 문제가 대두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조국 사태'가 분명히 했듯이 요즈음 한국 사회에서 소름 끼치게 들어맞는 중이다.

소득 분위 10~50%에 속하는 중산층, 특히 상위 20%에 속하는 이들은 노동 소득을 주로 실물 부동산과 자녀 교육에 투자한다. 이들은 우선 소득을 아껴서 집 한 채를 소유함으로써 주거를 안정시키고, 자녀가 분가할 때 자금을 보탬으로써 자녀의 집 한 채를 돕기도 한다. '자신만의 방'이 자유의 실질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자신의 소득 지위를 물려주려고 자녀의 '일자리' 교육에 온갖 노력을 집중한다.

그 결과, 한 세대가 지나면 새로운 사회적 격차가 이로부터 생겨난다. 중산층 이상의 자녀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새로운 진입 장벽이 설치된다. 교육을 통한 불평등, 주택 대물림을 통한 불평등이 중산층과 하층 계급을 갈라놓으면서 계층 이동을 방해하는 것이다. '세습 중산층'의 탄생이다.

'세습 중산층'의 의식은 상위 1%의 특권층과 다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전문직 자리를 차지한 자신을 자부하며, 이러한 소득 지위를 획득한 것이 자기 절제와 고된 노력의 결과라고 착각한다. 이른바 '능력주의'다. 이들은 명문고-명문대-전문직-고소득을 잇는 특권의 회로가 자신들한테 더 넓게 열려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없다. 게다가 누구나 기회만 닿으면 자신들과 똑같이 행동하리라는 자기 위안을 공유한다. 문제는 이러한 의식이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숙명으로 보는 것이요, '일단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의 도덕화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생각의힘 펴냄)에 따르면 한국 사회 역시 부모의 사회적·경제적 격차가 자녀의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 '세습 중산층' 1세대에 해당하는 1960년대생, 특히 '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지위가 그 자녀인 1990년대생의 지위로 세습 중이다. 이것이 청년 문제의 본질이다.

'흙수저론'으로 압축되는 '19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에 관심을 쏟을 때다. 금수저와 흙수저 사이에 '은수저'도 있다. 한국에 흔한 '세습 중산층 정당'들처럼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위선의 정치화'를 습관 삼지 않으려면, 불평등을 다룰 때 금수저의 자산 대물림뿐만 아니라 이제는 은수저들의 소득 지위 대물림도 문제 해결의 상수로 놓아야 한다. 이것이 청년 문제 해결의 출발점일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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