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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매크로에서 PC방까지 수면 위로 드러난 실시간 검색어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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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PC방 게임관리 프로그램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실검)를 조작하는데 악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동부지검 사이버수사부(부장검사 김봉현)는 지난 13일 PC방 관리 프로그램을 이용해 1년간 전국 3000여 곳의 PC방의 21만대 PC를 ‘좀비 PC’(누군가에 의해 원격조종 당하는 PC)로 만들어 실검 조작에 활용한 개발업체 대표와 마케팅 업체 대표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8년 1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PC방 관리 프로그램을 납품해 56만회에 걸쳐 PC방 이용자들의 포털사이트 계정을 탈취했고, 계정 1개당 1만원 정도에 판매하거나 직접 실시간 검색어 조작에 활용했다. 이들은 좀비 PC들을 활용해 1억6000만건의 포털사이트 검색을 실행했고 9만4000건의 연관 검색어, 4만5000건의 자동완성 검색어를 등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케팅 업체는 검색어 조작을 대가로 1년간 4억여원의 수익을 챙겼다. 지난 2016년 말부터 2290여개 포털사이트 계정과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댓글 2만여개를 조작한 일명 ‘드루킹’ 사태와 유사한 ‘검색어 조작’이 또다시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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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은 실검 논란

17일 업계에 따르면 포털사이트의 ‘실검’은 공익적 목적으로 탄생했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지난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실시간 검색어의 본래 목적은 국민 모두가 태풍이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위험을 인지하는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검은 점차 본래 목적에 벗어나 ‘여론’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10일에는 ‘한상균 석방’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해 실검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집회 사회자가 참가자들에게 “네이버에 ‘한상균 석방’을 검색해 달라”라고 요구한 게 원인이 됐다. 2017년 10월14일에는 김이수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실검 1위로 만들어 응원하자는 내용의 트위터글이 올라와 이날 오후 ‘힘내세요 김이수’라는 키워드는 4시간 30분동안 포털사이트 실검 1~5위 사이를 오갔다. 지난해 9월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도 “조국 힘내세요”, “조국 사퇴하세요” 등 정치적인 실시간 검색어가 상위권을 다툰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실검이 마케팅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잇따랐다. 일부 기업들이 이벤트 등을 내걸어 소비자들의 키워드 검색을 유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토스 정답’, ‘위메프 할인’ ‘티몬 데이’ 등 광고 키워드가 실검에 자주 노출됐고 포털사이트 광고 검색어에 대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검은 대중의 관심이 표출된 결과로 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조작이나 유도가 있었다면 이용자로서 순수하지 못한 결과를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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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27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한 “조국 힘내세요”. 이날 오후 2시를 기점으로 검색어가 급상승했다. 네이버캡처


◆ 실검 조작 막을 수 없어…카카오는 폐지, 네이버는 검색어 분류

전문가는 이같은 실검 조작을 100% 막을 방법은 ‘없다’고 단언한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매크로 등 실검 조작을 100% 막을 수 없는 것은 해킹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얘기”라며 “서로 나온 기술들을 활용해 공방을 벌이면서 양쪽이 다 발전하는 것이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포털사이트 측과 이용자들이 댓글 조작 정황이나 이상한 점을 탐지할 수는 있으나, 기술적으로 원천적인 차단은 사실상 힘들다는 것이다.

실검 조작 논란에 따라 포털사이트 다음을 운영하는 카카오는 총선을 앞둔 오는 2월부터 실검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11월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사용자마다 관심에 따라 실검 키워드를 분류하겠다는 보완책을 내놨다. 하지만 개인화된 실검 키워드 분류가 시사, 스포츠, 연예 등으로 구성돼 시사로 분류할 경우 정치적인 키워드를 둘러싼 실검 전쟁까지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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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선 ‘실검조작 방지법’ 논의…‘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도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가 조작이 의심되는 실검 키워드가 등장했을때 직접 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네이버, 카카오 등 포털 사이트사가 속해 있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지난해 10월 실검 이용자 1153명을 대상으로 ‘소비자 인식조사’를 한 결과 72%가 “실검 규제에 동의한다”고 답했고 그중 34%는 “포털서비스 사업자가 스스로 규제에 나서야한다”고 답했다. 31%는 실검을 규제하는 ‘제3의 민간기구’ 필요성을 제시했다.

국회도 이에 따라 포털사이트 사업자에게 ‘실검조작 방지’ 의무를 두고 타인의 개인정보나 매크로 등을 통해 실검을 조작한 이용자를 처벌하는 ‘실검조작 방지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지난달 30일 실검조작 방지법에 대한 내용을 잠정 합의하고 다음 법안심사소위에서 의결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일각에선 포털사이트의 ‘실검조작 방지’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민단체 오픈넷은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검색이나 글을 게시하는 행위에 매크로 등의 기술을 이용하거나 익명으로, 가명으로, 혹은 타인의 계정을 허락을 받고 이용하는 모든 행위는 원칙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행사의 영역”이라며 “(실검 조작의 근거가 되는)‘부당한 목적’이란 매우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기준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 용어로 사용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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