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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현미경] 트럼프 탄핵 상원재판 개시 선언때 중세식 고어 'Ye'가 등장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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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재판 미국 역사상 세번뿐… 옛날 탄핵규칙 거의 그대로 유지

펠로시는 소추안 서명식 때 한획마다 펜 바꿔 30개 사용

"너희는 들으라(Hear ye), 들으라, 들으라. 모두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명령하노니 이를 어길 시 감옥에 갈 것이다."

미 상원 의전을 총괄하는 마이클 스텐저 상원 사무총장이 지난 16일(현지 시각) 의사당에서 엄숙하게 말했다. 상원임시의장이 탄핵 심판(재판) 개시를 공식 선언할 테니, 떠들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세 번째 탄핵 심판이 시작됐다.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16일(현지 시각) 워싱턴DC에 있는 의사당 상원 러셀관에서 "REMOVE TRUMP(트럼프를 몰아내라)"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펼쳐들고 있다. 미 상원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한 탄핵심판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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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스텐저 사무총장의 입에서 나온 'ye'라는 고어(古語)가 눈길을 끌었다. 'ye'는 2인칭 대명사인 'you'의 중세식 표현으로 1700년대까지는 통용됐다. 그가 낯선 옛 언어를 동원한 것은 상원 탄핵 규칙에 따르기 위해서다. 그간 상원에서 대통령 탄핵 절차가 진행된 것은 앤드루 존슨 전 대통령(186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1998년) 때 2번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상원 탄핵 규칙은 1868년 만들어진 뒤 개정을 거의 하지 않았고 옛 영국에서 가져온 표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앞서 하원 서기가 15일 직접 상원에 탄핵소추안을 전달한 것도 이례적 장면이다. 원래 미 상·하원은 독립적으로 기능했기 때문에 하원 관계자가 상원으로 건너갈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날 서기는 탄핵소추안을 양손에 경건하게 받쳐 들고 탄핵 소추위원 7명과 함께 상·하원을 연결하는 복도를 지나 탄핵소추안을 상원에 전달했다. 이 역시 앞선 탄핵 사건들 때부터의 전통이다. 미 브라운대의 의회 전문가 리처드 애런버그 교수는 "이 같은 전통적인 절차를 준수하는 것은 하원 대표들이 만든 탄핵 문건이 엄숙하며, 상원이 그 문건을 경건하게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고 BBC에 말했다.

조선일보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15일(현지 시각) 상원에 제출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서명하고 있다. 펠로시 옆엔 펠로시의 이름이 새겨진 펜이 잔뜩 놓여 있고, 그는 서명할 때 한 획마다 펜을 바꿨다. /UPI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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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소추안 서명식에서도 미국 정치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연출됐다. 15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남용과 의회방해 혐의가 각각 적시된 탄핵소추안 2부에 서명했다. 펠로시 의장은 자기의 이름을 서명하며 한 획을 쓸 때마다 펜을 바꿨다. 서명식에선 도합 30개의 펜이 사용됐고, 서명식이 끝난 뒤 이 펜들은 탄핵 소추위원 등에게 전달됐다.

기념비적인 법안 등에 펜을 여러 자루 동원한 뒤 펜 자체를 역사적인 기념품으로 만드는 것 또한 1930년대부터 이어진 오래된 전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취임식 직후 첫 법안에 서명할 때도 펜을 여러 자루 동원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0년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개혁 법안에 서명할 때도 펜을 22개 썼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인종차별 금지 법안에 서명할 땐 75개 넘는 펜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절차가 상원으로 넘어가며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진영은 비상이 걸렸다. 탄핵 심판 중에 상원의원은 일주일 중 일요일을 뺀 엿새는 오후 1시부터 의사당 내에 있어야 하며, 심리 기간 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의사당 내에 휴대폰 및 전자기기를 반입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다. 당장 다음 달 3일 민주당 첫 경선이 아이오와주에서 있는데 꼼짝없이 이들은 워싱턴 DC에 발이 묶여야 한다. 탄핵 심판과 관계없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나 피터 부티지지 사우스벤드 시장은 아이오와 경선에 유리하게 됐다.

[임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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