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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백영옥의 말과 글] [133] 매일매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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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요즘 가장 듣기 좋은 말은 아무래도 ‘차 한잔’으로 시작하는 말이다. 집에서 혼자 마신다 해도, 기왕이면 머그 컵 말고 예쁜 손님용 찻잔을 꺼내고, 티백 말고 잎 차를 우려 마시며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힌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에서 주인공은 찻물을 따르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

"더운물과 차가운 물 소리가 다르다. 찬물은 경쾌하게, 더운물은 뭉근한 소리가 난다."

비 오는 여름, 그녀는 창밖을 보며 "장맛비 소리가 가을비 소리와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키키 기린'은 주인공의 다도 선생님으로 나오는데 이 영화가 유작이 되었다. 좋아하는 배우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마음이 더 애틋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오랜만에 고향 집에 온 아들이 현관에 들어서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자, 엄마가 부엌에서 나오며 이렇게 말한다. "다녀왔습니다라고 해야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언제나 함께 있는 엄마 마음이 느껴져서 어떤 포옹보다 그 말이 더 단단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 역시 먼 곳을 나서면 언제나 '이곳을 떠난다'가 아니라 '집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이 먼저다. 여행은 내게 늘 멀리 떠나는 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은 빗소리를 듣는다. 오감을 이용해 온몸으로 그 순간을 느낀다. 눈 오는 날은 눈을 보고, 여름에는 찌는 더위를,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느낀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 ‘일상다반사’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일일시호일’은 매일매일이 좋다는 뜻이다. ‘일일시호일’을 내 멋대로 해석하면, 여름은 더워서, 겨울은 추워서 좋다는 뜻 아닐까 싶다. 가을은 단풍이 지천이고, 봄은 꽃으로 피어나니 좋다는 뜻 말이다. 매일이 소중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삶이 겨울은 추워서, 여름은 더워서 싫다고 말한 사람과 같을 리 없다. 싫어할 이유를 찾는 건 또 얼마나 쉬운가.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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