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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15년 시집살이에도 ‘외국인’ 차별… 하소연할 곳도 가족뿐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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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변방’ 내몰리는 결혼이민자 / 2018년 기준 다문화 가구 33만여 가구 / 결혼이민자 속한 가구 비중 86% 달해 / 한국말 알아듣는데 앞에서 반말·무시 / 사회 구성원 자리매김 불구 존중 못 받아 / 10명 중 3명 “차별 경험”… 직장선 67% / 공공기관에서도 21% “무시당해” 응답 / 3명 중 1명 “도움 요청할 상대가 없어” / “교류의 장 형성·인식개선 교육 등 필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저 사람 외국인이야 한국인이야’라고 말하는 것도 다 들려요. 한국말을 잘 하지는 않지만 다 못 알아듣는 거 아니잖아요, 다 들리는데…. 그럴 때 진짜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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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결혼이민을 온 A(38)씨는 일상 곳곳에서 차별을 느끼며 지내왔다. 일자리를 구하러 가면 당황한 얼굴로 “캄보디아 사람이었냐”고 묻는 일은 물론, 길거리에서 빤히 쳐다보는 어르신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잦았다. 외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A씨를 아예 상대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A씨는 “외국사람이고 그러니까 별로 안 친해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며 “한국 엄마들은 말이 잘 통하고 비슷한 것도 많은데, 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에서 결혼이민을 온 B(38)씨도 비슷한 소외감을 느꼈다. B씨는 “아파트에 살았는데, 이웃 사람들이 표정 없이 말도 걸지 않았다”며 “한국사람끼리 모여 나를 쳐다보면서 이야기했다”고 털어놨다. 이들을 심층면접한 신난희 대구가톨릭대 다문화연구원 교수는 “(결혼이민자들은) 한국사회의 생활세계 전 영역에서 참담한 차별행위를 지속해서 경험해 왔다”고 분석했다.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 시행을 기점으로 한국은 본격적인 다문화사회에 돌입했지만 지금까지도 결혼이민자들은 여전한 차별과 낮은 사회적 지지 속에서 ‘변방’의 삶에 머물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 된 이들이 적절한 도움과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관계망’ 형성을 위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혼이민자들의 좁은 ‘사회적 관계망’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가구 수는 2018년 기준 33만4856가구로 전체 가구원 수는 100만 9000여명에 달한다. 이중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관계에 있거나 혼인한 적이 있는 한국 거주 외국인을 의미하는 ‘결혼이민자’가 속한 가구가 전체의 약 85.7%를 차지한다. 결혼이민자 수는 매년 증가해 2018년 15만9206명으로 집계됐고, 결혼이민자 중 한국에서의 초기적응을 마친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한 ‘혼인귀화자’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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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민자들은 우리 사회의 주요 구성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상 속 사회적 지지와 존중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이민자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파악하기 위해 ‘가족을 제외하면 아플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있는지’, ‘자신 또는 집안의 어려움에 대해 의논할 사람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각각 39.9%와 33.2%가 ‘없다’고 응답했다. ‘여가·취미생활을 같이할 사람이 없다(42.1%)’, ‘자녀교육 관련 의논할 사람이 없다(34.2%)’고 응답한 결혼이주민도 10명 중 3명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필요할 때 적절한 사회적 자원을 동원하기 어려운 결혼이주민들이 상당수 존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조사는 2018년 8월 기준 전국에 거주하는 다문화 1만7550가구를 대상으로 했다.

‘사회적 관계가 없다’고 응답하는 결혼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점검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윤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에 오래 거주한 결혼이민자일수록 (사회적) 네트워크가 더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문화사회가 본격화된 지 15년을 향해가는 시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더 포용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지) 네트워크를 개선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에선 ‘향후 참여하고 싶은 모임·활동이 없다’고 응답한 결혼이민자가 46.5%에 달해 결혼이민자들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결혼이민자에 대한 여전한 차별

결혼이민자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차별 또한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지점이다. 15년 전 태국에서 결혼이민을 온 C(40)씨는 택시를 탈 때나 주민센터를 찾을 때마다 반말로 응대하거나 외국인이라 무시당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그는 “한국말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똑바로 말할 수 없으면 (상대방이) 무조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며 “무조건 듣지 않고 ‘외국인이다’ 이렇게 무시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토로했다.

여가부가 실태조사를 통해 ‘지난 1년간 외국 출신이란 이유로 차별받은 경험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결혼이민자 10명 중 3명(31.6%)꼴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차별을 받은 장소는 거리나 동네(43.3%·기타 귀화자 포함), 자녀의 학교나 보육시설(30.3%)뿐만 아니라 주민센터나 경찰서 등 공공기관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21.4%)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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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직장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이들이 66.9%에 달하면서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이들을 위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차별을 받았을 때 결혼이민자·귀화자 중 대다수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78.1%·복수응답)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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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 형성해야…인식개선 교육도 필요

전문가들은 결혼이민자들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이들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개별 문항 하나하나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결혼이민자 중) ‘송파 세 모녀’와 같이 사회적 지지망이 없는 케이스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결혼이민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부연구위원은 “결혼이민자가 한국에서 뿌리내리는 데 있어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개인의 인식과 편견 등을 통해 (결혼이민자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고 이러한 의식은 정책을 통해 바꾸기는 힘들기 때문에, 꾸준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도 “(결혼이민자들은) 이주로 인한 긴장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분들이 우리에게 친화감을 느끼도록 먼저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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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착 성공 사례 보니... 교육·봉사 통해 교류, ‘고립된 섬’ 벗어나

결혼이민자들의 사회적 지지도를 높이고 지역사회 안에서 이들의 관계망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접촉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교육·봉사 등 다양한 접촉점을 통해 이어온 사회적 교류는 이들의 한국정착과 이웃관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13년 전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결혼이민을 온 박소희(41)씨는 경북 경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다문화 엄마 학교’를 통해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한국인 선생님과 다른 결혼이민자들과의 사회적 교류가 큰 힘이 됐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자녀와의 소통도 어려웠던 박씨는 엄마 학교를 통해 한국어와 초등학교 교과과정을 익혔다.

박씨는 “결혼이주여성, 다문화 엄마들의 한국생활은 아주 서툴고 어렵다”며 “수업을 같이 듣는 여러 다문화 엄마들 모두가 ‘잘 해보자’는 응원을 하며 서로에게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박씨는 사이버대학을 졸업해 현재는 요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박씨는 “이 배움을 통해 자신감이 생겼다”며 “(앞으로)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의 든든한 언니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25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오안희(49)씨는 지역 내 다른 결혼이민자들과 함께 ‘찌엠봉사단’을 꾸려 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서며 사회적 관계망을 넓혔다. 찌엠봉사단은 베트남어로 언니를 뜻하는 ‘찌(chi)’와 동생을 뜻하는 ‘엠(em)’을 합쳐 만든 이름으로, 충남 아산시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여성들로 구성된 봉사단체다.

오씨는 “(처음엔)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생활 조기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자조모임으로 결성됐다”며 “이후 한국 지역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활동범위를 확장했다”고 전했다. 찌엠봉사단은 연탄배달·김장 나눔·무료급식소 지원 등 주민들과 여러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등 다양한 접합점을 만들어가며 결혼이민자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윤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접촉의 지점들이 많으면, 결혼이민자에 대한 인식 개선과 (그들의) 사회 정착이 훨씬 빠르게 된다”며 “(결혼이민자들이 주민과) 함께 접촉할 수 있는 지점들을 만들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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