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검찰 개혁’을 향한 정부의 칼날이 매섭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13일 저녁 전국 검찰청의 직접 수사 담당 부서 13곳을 폐지하는 ‘직제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이 개편안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만 6개의 직접 수사 부서가 형사부 등으로 전환됩니다. 국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되며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이 폐지됩니다. 법무부의 검찰 고위 간부 인사로 윤석열 검찰총장의 참모들이자 정권 수사 지휘부가 전면 교체된 것에 이어, 다음주에 수사 실무진 교체가 예상되는 중간 간부 인사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청와대·국회·경찰 전방위적 검찰개혁 요구에 터져나오는 일선 검사들 반발
법무부가 대대적인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단행한 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검찰 상징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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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청와대와 국회, 경찰 등 전방위적으로 조여오는 숨통에 검찰 내부에서는 ‘분노’와 ‘상실감’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검찰 개혁에 동참한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일선 검사들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속내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취임 이후 총 7명의 검사가 사직한 가운데 김웅(50·사법연수원 29기) 법무연수원 교수가 지난 14일 이프로스에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대하며 작성한 사직 글에는 620여개의 댓글이 쏟아지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날 정유미(48·30기) 대전지검 형사2부장검사가 올린 ‘임은정 부장에게- 인사재량에 대한 의견도 포함하여’란 제목의 글에도 160여개의 릴레이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정 부장검사 글의 댓글에는 주로 후배 검사들이 “임은정 부장님 일선에 있는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면 언론에 보다 신중하게 글을 써달라”는 동일한 글에 숫자를 붙이며 개인의 의견을 추가하는 릴레이 댓글을 이어갔습니다. 임 부장검사에 개인에 대한 분노보다도, 그의 말 끝에 따라오는 검찰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한 상실감이 더 느껴졌습니다. “하루하루 검사로서 할 몫을 다하려는 일선 검사들이 얼마나 박탈감과 상실감을 갖게 되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달라”, “검사의 ‘사’자는 ‘事(일 사)’자로 알고있다. 후배들은 한달에 많게는 수백건의 사건을 처리하며 밤을 지새고 있다”, “일선에서 묵묵히 일하면서도 ‘20년이 지나도 물갈이 될 세력’으로 매도당하는 후배들의 고통을 한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댓글 등이 그렇습니다 .
또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도 담겼습니다. “(임 부장검사)가 개정된 형사소송법과 경찰청법에 문제가 있다고 SNS에 한번 밝혀주시면 달려가 무릎이라도 꿇겠다”, “어이없는 수사권 조정안이 성립된 상황에 후배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내용 등입니다.
●검찰, 직제개편안 전면 반대···일부 변호사·판사들까지 확산
추미애(왼쪽) 법무부 장관이 7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에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윤석열(오른쪽) 검찰총장과 약 30분간 공식 상견례를 가졌다. 사진은 추 장관과 윤 총장이 이날 건물로 들어가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모습.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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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지난 16일 법무부의 직제개편안에 대한 일부 반대 입장을 법무부에 제출합니다. “범죄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전담부서는 그대로 둘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중앙지검의 차장·부장 검사들은 이성윤 중앙지검장에게 반대 의견을 강력하게 전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한 중앙지검 간부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취임사 중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은 오로지 헌법과 법에 다라 국민을 위해서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 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헌법 정신을 강조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반발’ 움직임은 일부 법조계로도 확산되는 모양새입니다. 전직 대한변협회장 5명을 포함한 변호사 130명은 17일 검찰 직제개편안 고위 간부 인사에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에서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 간부들이 대부분 교체된 것은 수사 방해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다음 정권에서도 권력형 비리 수사를 무마시킬 수 있는 최악의 선례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대통령의 인사권은 국민이 준 권력이므로 엄정하고 공정하게 행사돼야 한다”고 최근 고위 간부 인사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또 조국 전 장관 가족 비리 의혹, 삼성물산·제일모직 인수합병 의혹,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신라젠 주식거래 의혹 등, 이번 직제개편안으로 폐지 대상인 수사 부서들이 맡은 주요 사건을 언급하며 수사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청와대가 검찰의 압수수색 집행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판사들의 비판도 나오고있습니다. 현직 판사들이 현안을 익명으로 토론하는 ‘이판사판 야단법석(이사야)’이란 다음 카페에서는 비판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검찰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실을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청와대는 “압수할 물건의 범위가 특정되지 않았다”며 거부했습니다. 이에 판사들은 이사야에 “검사의 청구에 따라 법관이 적법하게 발부한 영장을 대상자가 부적법하다고 임의판단해 거부할 수 있다면 어떻게 형사사법 절차가 운용될 수 있느냐”, “청와대가 이처럼 영장을 무시하는 행태에 대해 사법부의 적절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청와대의 압수수색 영장 불응이야말로 법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등의 글을 쏟아냈습니다.
지난 16일에는 참여연대 양홍석 공익법센터 소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비판하며 사직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이 과연 옳은 방향인지 의문”이라면서 “경찰 수사의 자율성, 책임성을 지금보다 더 보장하는 방향 자체는 옳다고 해도, 수사 절차에서 검찰의 관여 시점, 범위, 방법을 제한한 것은 최소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내주 중간간부 인사·수사권 조정안 후속 조치 놓고 피바람 예상
배성범·김웅 배웅받는 윤석열 - 윤석열(왼쪽 다섯 번째) 검찰총장이 14일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에서 열린 신임 부장검사 리더십 과정 강화 프로그램 일정을 마치고 배성범(첫 번째) 법무연수원장, 이날 사의를 표명한 김웅(세 번째) 법무연수원 교수 등의 배웅을 받으며 차로 향하고 있다. 한국일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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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반발에 일부 법조계도 동조하자, 법무부는 대검의 직제개편안 반대 의견을 일부 수용하며 한 발 물러선 모양새입니다. 법무부는 17일 형사부·공판부로 전환할 예정이었던 직접수사 부서 13곳 가운데 2곳을 전담 수사기능을 유지하고 명칭에 이를 반영하는 직제개편안 수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의 반부패수사3부와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를 각각 공직범죄형사부와 식품의약형사부로 바꿔서 기존의 수사 전담 기능을 유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주로 법무부의 2차 검찰 인사에서 또 한번 윤석열 사단의 교체가 예상됩니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2, 3차장 등 실무진 교체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2차 인사로 수사팀이 해체되면 검찰과 법조계에서 더한 반발이 터져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이를 예상한 듯 수사를 바짝 서두르는 분위기입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이정섭)은 17일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불구속 기소하며 수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관건은 한창 진행 중인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가 제대로 된 마무리입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김태은)는 최근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과 사건 핵심 관계자인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 송철호 울산시장 측근 등을 잇따라 소환해 조사했습니다. 또 아직 답보상태이지만 청와대 압수수색에 나섰고 경찰청 본청을 3번째 압수수색 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주요 사건 관계자들이 조사 일정을 미루는 등 조바심을 내는 검찰에 비해서 수사 진척은 더뎌보입니다. 황운하 경찰인재개발원장의 소환 조사 일정도 애초의 계획보다 늦춰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 지휘부에 이어 실무진까지 전면 교체된다면 검찰 내부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검찰 개혁에 동조하던 법조계 등에도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직제개편안에서 한 발 물러선 법무부가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서 어떤 결정을 할 지 이목이 집중됩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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