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피용익의 록코노믹스]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의 역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출근길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다.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힘들고 짜증나는 출근길에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다. 실제로 음악 감상은 우울감을 감소시켜주고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기 싫은 공부를 하거나 힘든 운동을 할 때도 음악을 듣는다.

이렇게 음악이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에 비해 우리가 음악을 듣는 데 쓰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낮다. 음원 스트리밍 업체들은 월 6900원이면 무제한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커피 한 두 잔 값이다.

음악을 듣는 비용이 이렇게 낮아진 것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나타난 이후다. 만약 인기 차트 100위에 있는 곡을 모두 컴팩트디스크(CD)로 구입해 들어야 한다면 월 100만원도 모자랐을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고(故) 앨런 크루거 전 프린스턴대 교수는 저서 ‘록코노믹스’(2019)에서 “음악은 인류 사회에서 가장 할인된 재화이며 매일 더 저렴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크루거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전 세계 인구가 음악에 소비한 돈은 500억 달러다. 모든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것의 0.06%다. 영화, 드라마 등을 포함한 전체 엔터테인먼트 소비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그친다.

크루거는 음악 감상이 경제학 이론인 ‘가치의 역설(paradox of value)’을 잘 설명해준다고 주장했다. 월 6900원의 무제한 음악 감상이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처럼, 소비자가 재화나 서비스로부터 얻는 가치는 총지출과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가치의 역설은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1776)에서 제기한 의문에서 비롯됐다. 스미스는 물은 인간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유용한 재화인데도 값이 아주 싸고, 다이아몬드는 전혀 없어도 생활할 수 있는데 아주 비싼 값인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물었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현상은 ‘스미스의 역설(Smith’s paradox)’이라고도 부른다.

스미스의 의문은 1870년대 들어 한계효용학파에 의해 해결됐다. 한계효용학파는 스미스 등 고전학파의 방법론과는 달리 한계효용 개념에 기초해 경제이론을 전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품의 가격이 그 상품이 제공하는 총효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계효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경제학에서 ‘효용’이란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재화의 효능을 뜻한다. ‘한계효용’은 일정한 종류의 재화가 잇따라 소비될 때 최후의 한 단위의 재화로부터 얻어지는 심리적 만족도다.

여기에 비춰보면, 물은 총효용은 높지만 공급량이 많기 때문에 한계효용이 낮아 가격이 낮고, 다이아몬드는 공급량이 적어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에 한계효용이 높아 가격 또한 높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음악 감상은 한계효용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계효용은 소비량이 증가함에 따라 감소해가는 경향을 보이는데, 매일 똑같은 음악만 반복해서 듣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유행가 한 곡만 놓고 보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겠지만, 음악 전체를 생각해 보면 ‘가치의 역설’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셈이다.

이데일리

애덤 스미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