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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김범준의 돈의맛]기업은행 사태 언제까지..'출구전략' 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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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고기와 뒷담화는 씹어야 제맛이고, 술잔과 사랑은 나눠야 맛있다. 그렇다면 돈은? 잘 알고 잘 굴리고 잘 써야 맛이다. 서울 을지로·여의도 금융가(街) 뒷이야기, 욜테크(YOLO+짠테크) 족(族)을 위한 금융 꿀팁, 직장인들의 핫플레이스·맛집·패션 등 괜찮은 소비생활을 ‘돈의맛’ 코너로 전하고자 한다.

이데일리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통행을 막는 구조물과 현수막이 출입구를 둘러싸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3일부터 윤종원 신임 은행장에 대한 출근 저지 투쟁을 15일째 이어가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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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IBK기업은행장의 거취를 두고 금융권과 정치권 안팎으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기업은행 노동조합 등 노동계는 ‘정부 낙하산 인사’라고 연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의 출근 저지 단체행동을 이어가고 있죠.

이로 인해 지난 2일 제26대 IBK기업은행장에 임명된 윤 행장은 15일째 본점 집무실로 정식 출근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지난 2013년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14일), 2017년 은성수 전 한국수출입은행장(5일) 출근 저지 기록을 넘어서는 금융권 통틀어 역대 최장 기록입니다.

그 동안 윤 행장은 직접 노조와 대화로 해결하겠다며 임기 첫 시작날인 지난 3일을 비롯해 지난 7일 및 16일 등 총 세 차례 본점 출근을 시도했지만 ‘낙하산 반대’를 외치는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윤 행장은 이밖에도 언론을 통한 메시지와 물밑 접촉 등을 통해 꾸준히 노조에게 대화의 손을 내밀고 있지만 노조는 “직접 ‘당(黨)·정(政)·청(靑)’과 대화하겠다”며 애써 외면하고 있죠. 여전히 정상 출근이 불투명한 윤 행장은 취임식도 하지 못한 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임시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기업은행 노조는 무엇이 그토록 불만이길래 이렇게까지 초강경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노조는 이번 단체행동을 시작하면서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는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는 반노동적·반민주적 행태”라며 “2013년 기업은행장으로 기획재정부 관료가 내정됐을 때 ‘관치는 독극물’이라고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낙하산 인사에는 침묵하고 있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죠.

노조는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약 10년만에 정부 관료 출신 은행장 임명을 강행한 것에 대한 당정청의 유감 표명을 듣고 싶다는 입장입니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이지만 시중은행로서의 성격도 큰 만큼 투명한 절차와 다각적 검토를 통해 금융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은행장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에서죠. 결국 정부의 ‘깜깜이식’ 낙하산 인사가 싫다는 말이죠.

하지만 정부는 절차에 문제가 없다며 오히려 노조의 인사권 개입에 대해 거북해 하는 입장입니다. 근거법인 중소기업은행법이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이 후보자를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면(임명과 면직)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기업은행은 정부가 출자한 일종의 공공기관이고 인사권은 정부에게 있다”며 “변화가 필요하면 외부에서 수혈하는 것이고, 안정이 필요하면 내부에서 발탁하는 것인데 (노조가) 그냥 내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토(veto·거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윤종원 신임 행장은 경제·금융 분야에 종사하며 중책을 역임하는 등 경력 면에서 전혀 무슨 미달되는 바가 없다”고 일축하며 윤 행장을 전폭 지지하고 나섰죠.

그럼에도 기업은행 노조 측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4월 총선까지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가겠다며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죠. 다만 당초 윤 행장의 자진 사퇴 대신 당정청의 사과와 은행장 임명절차 개선을 요구하는 쪽으로 입장을 조금 선회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은행장이 장기간 정상 출근하지 못함에 따른 경영 차질은 노사 양측에도 모두 부담인 만큼 다음 주쯤에는 사태를 일단락 지어야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투쟁에 드라이브를 걸은 기업은행 노조가 ‘명분과 실리’를 일정 부분 취하는 모습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그림이 그려져야 하겠죠.

금융권 안팎에서는 기업은행의 대안적 ‘출구 전략’으로 직무급제 시행 유예, 노동이사제 도입 등 노동계의 숙원 사업에 힘이 실리며 본격 논의의 장이 마련되는 것을 조심스레 관측하기도 합니다.

또 명예퇴직 제도 도입 논의 활성화도 출구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서 임금피크에 따른 희망자 명예퇴직은 노사가 모두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고 지난해 11월 첫 노사정 간담회도 진행된 만큼 탄력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이죠.

금융권 관계자는 “윤 행장은 노조에 대화를 요구하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하고, 노조는 당정청과 대화를 요구하지만 정부도 이를 거부하는 ‘불통’적 상황이 사태를 길게 끌어가고 있다”며 “아직까지 기업은행의 뾰족한 출구 전략이 보이진 않고 있지만 노동계 이슈와 함께 지켜보며 풀어 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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