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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원희복의 인물탐구]통일인문학 창립 김성민 “통일인문학은 분단 습성을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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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통일인문학연구단장 김성민 건국대 교수 / 김정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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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 이후 박근혜 정부까지를 통일·북한 연구가들은 ‘북한연구의 공백기’라고 부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은 없다>라는 책을 쓴 사람을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했을 정도다. 실제 통일부가 매년 발간하는 <통일백서>도 이 기간 남북대화는 거의 공백으로 돼 있고, 심지어 2011년판은 발행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연구의 공백기를 넘어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암흑기에 북한연구에서 빛을 밝힌 연구 분야가 있다. 통일문제를 인문학적 접근으로 다룬 ‘통일인문학’이 그것이다. 그동안 북한·통일문제는 대부분 북한체제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북의 행위를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통일인문학은 남북 ‘사람의 통합’이라는 근원적 문제에 접근한다. 통일인문학은 문학·역사·철학이 주가 된다. 전국 57개 대학 인문한국지원사업(HK·Humanities Korea Project) 연구소 협의회장을 지낸 김성민 교수(건국대 철학과)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통일연구 방법론을 들어봤다. 지난 1월 10일 대학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북한연구 암흑기에 ‘통일인문학’

-통일인문학의 토대가 된 교육부 인문한국지원사업이란 무엇인가. 김 교수는 HK 연구소 협의회장도 3번이나 연임했다.

“‘문학·사학·철학’으로 상징되는 인문학 전공자는 취업이 안 되니 대학 지원자가 없고, 학과가 없으니 교수가 사라지는 악순환으로 결국 ‘인문학이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이에 교육부는 2007년부터 인문학지원사업을 공모했다. 대학에서 흡수하지 못한 연구인력을 연구소 중심 공동연구체로 만드는 것이다. 인문학의 역량을 유지하고 인문학 대중화를 위해 시도했던 사업이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세대 국학연구원,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등 전국 57개 대학 HK 연구소에서 450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학계에서 통일인문학이라는 용어는 생소했다.

“그동안 통일·평화 얘기는 사회과학자가 했다. 2008년 내가 처음으로 ‘통일인문학’을 주창해 지금은 고유명사처럼 됐다. 나는 사회과학 위주의 통일담론을 문학·사학·철학 등 인문학적 패러다임으로 얘기하자고 했다. 철학은 통일사상·이념팀, 문학은 분단정서·문화팀, 역사는 생활·문화팀 등 3개 팀으로 나눠 연구했다. 먼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식민·분단·이산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결국 사람의 통합을 이루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 통일인문학은 소통·치유·통합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인문학연구단에는 어느 정도 연구인력이 가담하고, 그 성과는 무엇이었나.

“교수 10명과 일반 연구원(박사) 13명, 연구보조(석·박사과정) 25명 등 50명 넘는 연구인력이 참여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간접비를 포함해 매년 11억4000만원을 교육부로부터 지원받았다. 10년간 약 110억을 받은 인문지원 사업으로, 유사 이래 최대다. 그 10년간 국내 심포지엄 40회, 국제 25회, 세미나 135회를 했다. 결과물로 기획도서·연구도서·구술총서·아카이브총서 등 단행본 80권을 냈다. 교육부 1·2·3 단계 평가에서 최우수 평가받고 교육부 장관상까지 받았다. 그리고 이 사업은 7년 더 연장됐다. 이는 전국 57개 HK 연구소에서 단연 톱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전국 대학 통일·북한학과는 거의 사라졌다. 국책연구소를 제외하고 민간 연구소도 마찬가지로 국내 통일·북한 연구자들은 대거 실업자 신세가 됐다. 그나마 통일연구를 유지한 것이 통일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통일인문학은 이명박 정권 때 선정됐다. 아마 통일문제에 대해 사회과학적 접근은 민감한 부분이 적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인문학적 접근이 조금 용이했던 분위기도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통일인문학은 역사·철학·문학 등 학제 간 융·복합적 통일연구로 통섭을 실천한 모델이다.”

연구단이 만든 80권 중 6권이 우수도서

통일인문학연구단이 낸 연구서를 보면 그동안 연구 분야와 성과를 알 수 있다. 그것은 <통일에 대한 인문학적 패러다임>,

<코리언의 역사적 트라우마>, <분단극복을 위한 인문학적 성찰>, <문화분단: 남한의 개인주의와 북한의 집단주의>, <고전문학을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 <통일한반도의 문화디자인>, <북한 애니메이션(아동영화)의 특성과 작품 정보> 등이다. 그동안 북한체제나 국제관계, 군사·안보 등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북한·통일학과는 많이 다르다. 사실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관계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거의 ‘중계’하다시피 하는 연구방법론은 너무 식상할 뿐 아니라 효용성도 별로 였다.

김 단장은 “대학생·청소년·초등학생을 위한 통일인문학 교재를 만들었고, 지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통일인문학 교재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인문학연구단이 만든 80권의 도서 중 6권이 문체부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이 책은 각 교육청과 연계해 보급하고 강연을 요청하면 연구단 교수들이 가서 강연을 하는 방법으로 통일인문학을 확산시키고 있다. 그는 “연구 과제에 ‘사회적 확산’ 항목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사회적 확산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철학과 교수다. 사유를 강조하는 철학자가 통일문제를 다루는 것은 좀 의외다. 게다가 그는 사회적 확산을 강조한다. 그는 “서양의 플라톤 정치·사회철학은 이론과 실천을 강조하고 동양철학도 지행합일을 의미한다”면서 “나는 철학강의에서 철학은 명사가 아닌 ‘철학함’, 즉 실천을 통해 노력하는 동사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는 “인문학이란 비판과 실천의 학문”이라고 말했다.

통일문제와 관련해 실천적 측면은 그가 맡고 있는 민주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정책위원장이란 직함에서도 드러난다. 민화협은 남북화해를 통한 교류·협력·지원, 그리고 평화통일교육 등을 실천하는 민간단체다. 그는 이 민화협에서 100여 명에 이르는 교수·학자로 이뤄진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미 그는 10여 년 전부터 철학자로선 드물게 북한 김일성종합대와 북한사회과학원 연구자들과 교류해왔다. 남북관계가 꽉 막힌 지난해 가을에도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과 접촉하기도 했다.

-북한과 어떤 학술채널을 가지고 있나. 이들 채널은 어떻게 확보했나.

“2008년 제1회 두만강포럼에 참여하면서 관계를 맺었다. 두만강포럼은 SK 고 최종현 회장이 만든 국제포럼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됐을 때도 김일성종합대 교수와 조선사회과학원 학자들이 나온다. 그래서 김일성종합대 최상건 총장과 정만호 부총장을 일 년에 한두 번 중국에서 만난다. 지난해 포럼에서는 내가 기조발제를 했다. 그리고 내가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장을 맡고 있는데 여기에도 북한 학자들이 참석한다. 이 두 통로로 10년 넘게 북한과 접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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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중국 옌볜에서 열린 두만강포럼에서 김성민 단장과 북한 김일성종합대 최상건 총장(맨 오른쪽), 정만호 부총장이 헤드테이블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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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에서 통일연구가로 변신

-최근 남북접촉이 꽉 막힌 상황에서 그나마 물꼬를 틀 소재로 학술교류가 적합하다. 올해 어떤 접촉계획이 있는가.

“올 7월 중국 옌볜대에서 조선반도 국제학술회의가 예정돼 있다. 또 10월 두만강포럼에 북한 김일성종합대 교수들과 만날 예정이다. 북한 학자와 세미나를 꾸려보면 서로 민감한 부분이 있지만 역사·문학·민속학 등 인문학적으로 통하면 부딪칠 일이 거의 없다. 특히 남북의 차이를 서로에 맞추려면 갈등이 나온다. 둘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다. 세미나가 끝나고 뒤풀이할 때 뜨거운 동포애를 나눌 수 있다.”

-올해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에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이는 어떻든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물론 북한은 김계관을 통해 비판적인 논평을 내기도 했다. 이렇게 막힌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너무 아쉬운 것은 문 대통령이 2018년 4·27정상회담, 9·19평양선언 이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선언했어야 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했으면, 문 대통령도 행정명령으로 재개했어야 했다. 미국이 반대하더라도 무릅쓰고 했어야 했다. 미국과 관계를 걱정하는데 그렇다고 미국과 관계가 좋아졌는가. 만약 그렇게 했으면 미국에도 ‘제3의 통로’를 열 명분을 줄 수 있었다. 너무 아쉽다. 문 대통령이 담대한 독트린을 했어야 했다.”

김 단장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9년 건국대 철학과에 입학해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각 대학 총학생회가 부활할 때 그는 군대를 마친 복학생으로 총학생회장에 선출됐다. 당시 서울대 김민석(전 민주당 의원), 연세대 송영길(현 민주당 의원), 고려대 김영춘(현 민주당 의원) 등과 총학생회 활동을 같이했다. ‘다행히’ 그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감방에 가지 않고 기소유예 정도로 끝냈다.

김 단장은 1994년 중부대 교수를 시작으로, 2001년 건국대 철학과 교수에 부임했다. 그동안 문과대학장, 인문학연구원장,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 북한연구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그는 ‘포스트모던 스피노자 윤리학에 대한 헤겔주의적 비판’(2014년)이라는 지극히 철학적인 논문도 쓰지만, ‘분단시대, 통일 사유와 철학의 실천’(2015년)이라는 통일 관련 논문도 쓴다. 그는 2016년부터 대학 내 13개 연구소를 엮은 ‘KU통일연구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 성과로 교육부의 인문학 분야 대표연구자 10명 중 1명으로 선정되고, 2019년 11월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김 단장이 철학자에서 통일연구가로 변신한 계기는 2007년 미국 교환교수 시절이다. 그는 1년 반 동안 미국 뉴욕주립대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깨달은 것이 바로 분단문제였다. 그는 “미국에서도 자주 접하는 우리 문제의 본질은 역시 분단문제였다”며 “분단체제로 인해 우리는 신체와 사고가 분단된 아비투스(습성)로 점철돼 있음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귀국한 2008년부터 통일인문학을 주창했고, 다행히 지난 10년 성과가 좋았다. 그는 추가로 늘어난 7년은 보다 현실성 있는 연구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그는 “철학은 관계의 학문이고, 남북도 관계학”이라며 “통일은 사회문화적 통합을 통한 사람관계의 통합”이라고 말했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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