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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하청의 나라 대한민국, ‘김용균법’ 시작부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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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법과사회]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 때로는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법과 사회’가 최근 갈등의 중심에 놓인 법을 다룹니다.

경기 후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지만 ‘사람 장사’는 불황을 모릅니다. 임금노동자의 36%(2019년 8월 기준)가 비정규직인 사회에서 노동자 파견은 하나의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노동시장 비정규직 문제를 상징하는 불법파견은 숱한 죽음도 불러왔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부른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도 그런 죽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개정된 김용균법(개정 산안법)이 시작부터 논란입니다.

◇위험작업 쪼개기로 산안법망 피해가는 사업주

개정 산안법은 지난 16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파견, 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못한 노동환경에 내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개정 산안법은 원청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1998년 노동시장 유연화 명목으로 김대중 정부가 도입한 ‘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을 20년 넘게 상대하면서 막대한 노하우를 축적해왔습니다. 노동조합 주장에 따르면 원청 사업자들은 이번에도 산안법 개정에 맞춰 이 노하우를 활용한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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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 국가인권위 권고 이행 및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요구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고 김용균씨 어머니 이미숙씨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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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최근 한 철강기업이 도금 작업과 관련해 개정 산안법을 피하기 위한 꼼수를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개정 산안법에 따르면 도금 작업은 위험 작업으로 분류해 하청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연 도금 작업을 ‘부산물 제거 작업’과 ‘아연 투입 지원 작업’으로 분리해 전자는 계약직에, 후자는 하청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작업 세부 사항에 대한 규정이 없는 한 새 산안법은 도금 작업 전 과정을 위험 작업으로 봐 하청을 맡겨서는 안되며, 작업을 쪼개 이를 우회하는 것은 법률 위반이라는 것이 민주노총 주장입니다.

개정법의 본질이 작업의 ‘위험성’을 기준으로 하청 금지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면 작업을 분리한다고 해서 그 위험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민주노총의 우려를 무시하기 힘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동부는 이같은 문제 지적에 대해 “현장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는 극히 모호한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사실 노동계는 산안법 개정 과정에서 규제 내용 후퇴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지난해 12월 개정안 하위법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을 당시에도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며 개정안을 성토했습니다. 도급 금지 범위가 지나치게 좁고 그마저도 시행력을 담보해줄 처벌 규정이 약해져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이유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지난해 11월 노동부에 도급 금지 유해 위험 작업 범위 확대를 권고했습니다. 위험 작업 도급(하청) 남발이 작업환경 통제에 대한 기업의 무관심을 부추기고 산재 발생 시에도 책임 주체 논란을 일으킨다는 것이 산안법 개정의 주된 배경인데, 바뀐 법이 이러한 문제를 보완해주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기업측도 개정 산안법에 대한 불만이 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주 책임 범위가 늘어나 범법자가 양산될 우려가 있고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경영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 법에 대한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가운데 노동부는 인권위 권고에 대한 답변을 20일까지 내놔야 합니다. 답변에는 산안법 추가 개정에 대한 입장 등이 담길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노동 관련 정책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의 공격을 동시에 받고 있는 현 정부가 이 답변 마련에 난처한 상황임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같은 곤경을 넘은 구체적인 움직임이 현 정부에서 나오길 바라는 기대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1년 전 온 사회가 추모했던 젊은 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는 것을 바라는 이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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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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