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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최고 수준의 사고’냐, ‘수뇌부의 생각’이냐 오역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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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역 논란이 벌어진 제주4·3평화재단이 공개한 주한 미 군사고문단 로버츠 단장의 보고서./제주4·3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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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넷] “Top-level을 잘못 번역해서 설레발치는 기레기.” 지난 1월 13일, ‘오늘 자 기레기.png’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이 누리꾼은 이어 이렇게 적었다. “심지어 이걸 당당하게 헤드라인으로 뽑음 ㅋㅋㅋㅋㅋ”

누리꾼의 주장을 요약하면 문서를 잘못 번역해 엉터리 기사를 쓴 기자가 심지어 제목까지 그 잘못 번역한 것을 강조해 뽑았다는 것이다. 기사는 전날 연합뉴스가 전송한 ‘제주 4·3 당시 미군 수뇌부 초토화 작전 최고 수준 사고 극찬’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이 누리꾼이 덧붙여놓은 리스트에 따르면 연합뉴스뿐 아니다. 헤드라인제주·뉴스앤제주·아이한라 등 제주지역매체뿐 아니라 KBS나 MBN 등이 운영하는 인터넷매체도 비슷한 제목으로 보도했다.

기사는 제주4·3평화재단이 미국 현지조사를 통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돼 있는 문서 중 제주 4·3 관련 기록을 발굴한 성과를 소개한 것이다. 문제의 ‘최고 수준의 사고(top level thinking)’는 채병덕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서한에 대한 주한 미 군사고문단 로버츠 단장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이 누리꾼의 주장은 채병덕 총장이 “공산주의자를 싹쓸이(cleaning-up)하기 위해 제주에 1개 대대를 추가로 파병하겠다”고 밝힌 계획에 대해 ‘최고 수준의 사고’라고 찬사를 보낸 것이 아니라 그 계획은 수뇌부, 그러니까 이승만의 계획이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누리꾼의 주장은 사실일까.

일단 저 번역은 연합뉴스가 한 것이 아니다. 기사 원본은 제주4·3평화재단의 홈페이지에 등재된 보도자료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최고 수준의 사고’ 극찬이라는 제목은 보도자료에서 세 번째 제목으로도 언급돼 있다. 따라서 다른 매체들의 보도도 한 ‘기레기’가 잘못 번역하니 줄줄이 따라 베낀 것”이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최초의 ‘소스’, 다시 말해 제주4·3평화재단이 제공한 자료에 기반을 둔 보도일 가능성이 크다. 재단 측이 주장을 검증할 수 있는 원문자료를 함께 제공하고 있지만 확인하지 않고 기사가 작성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주장도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야기를 듣고 번역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재검토했지만 현재 번역이 맞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미 군사고문단 단장이 총장에게 보내는 답장인데 굳이 제3자처럼 최고 수뇌부를 별도로 지칭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문서 하단에도 top-level이 언급되는데, 그 경우엔 수뇌부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결론짓자. 오역 아니라고 한다. 한 ‘기레기’의 잘못을 따라 베꼈다는 추측도 사실이 아니었다. 제주 4.3사건 당시 미군정 측은 한국수뇌부의 ‘싹슬이’ 계획을 알고 있었고, 격려했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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