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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겉치레 삼가고 실질 추구…`거화취실` 몸소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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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격호 명예회장 별세 ◆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 위치한 신격호 명예회장 집무실. 아직도 이곳에는 '거화취실(去華就實)'이란 글자가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겉치레를 삼가고 실질을 추구한다'는 뜻인 거화취실은 신 명예회장이 기업가로 거듭난 후부터 줄곧 가슴속에 새겨온 생활 철학이다. 신 명예회장 모교인 일본 와세다대 교훈이기도 하다.

허례허식을 멀리하는 품성은 집무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신 명예회장 집무실은 우리나라 5대 기업 총수가 업무를 보는 곳이라고 하기엔 크기가 매우 소박하다. 내부 장식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인은 경영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임원진과 의사 결정을 고민하는 데 필요한 가구들만 배치했다. 한창 왕성히 활동하던 시절엔 운전도 수행기사 없이 직접 했을 만큼 소탈한 성격을 지녔다.

외형보다 내실을 중시하는 신념은 회사 경영 방침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고객 제일주의'가 대표적이다. 신 명예회장은 1979년 서울 소공동에 '롯데 일번가'를 조성할 당시 바닥 타일로 값비싼 이탈리아산 제품을 고집했다. 깔끔하게 정비된 지하상가를 방문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시 주위에선 이를 만류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롯데 일번가가 120m에 달하는 공간인 만큼 금전적 비용이 클 것이란 우려에서였다. 그럼에도 신 명예회장은 "비쌀수록 10년, 20년 더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비경제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며 의지를 꺾지 않았다. 또 백화점이야말로 그 나라 경제와 위상을 보여주는 얼굴인 만큼 품격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명예회장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롯데 일번가는 150여 개에 달하는 유럽식 상점을 구경하고 또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신 명예회장의 고객 중심 경영이념은 '평창면옥'을 둘러싼 일화로도 전해진다. 1988년 롯데백화점 잠실점 오픈을 앞두고 직원들은 본점보다 3배나 넓은 매장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에 빠졌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신 명예회장은 "평창면옥에서 답을 찾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평창면옥은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한식당으로 음식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 그럼에도 평창면옥에 들르기 위해 멀리서 차를 끌고 오는 손님이 많았다. 신 명예회장은 그 이유를 '상품'에서 찾았다. 식당의 본질인 음식 맛이 훌륭하기 때문에 평창면옥에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 명예회장은 "고객이 있기에 회사도 존재하는 만큼 고객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매장은 저절로 채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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