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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신격호 별세]1세대 韓경영인…유통·관광·건설 불모지서 고군분투(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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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9세 가족들 품에서 평화롭게 영면

일본 성공 후…1967년 롯데제과 설립

유통, 석유화학, 식품, 건설·제조, 금융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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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차민영 기자, 이승진 기자]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 나이로 별세했다. 롯데그룹의 계열사들을 유통, 석유화학, 식품, 건설·제조, 금융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대표 기업군으로 성장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불모지나 다름 없던 국내 관광·서비스산업계 발전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기도 하다.


롯데그룹은 이날 오후 4시29분 신 명예회장이 신동빈 롯데 회장과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신 명예회장은 지난 18일 밤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서울 현대아산병원에 입원했다. 지난해 12월에도 건강 문제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바 있으며 한 달 전인 11월에는 탈수 증상으로 보름 가량 병원에 머물렀다.


그룹 관계자는 "노환으로 입원 중이던 신 명예회장은 지난 18일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으며 19일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일본 출장 중 급히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임종을 지켰다. 신 전 부회장은 부인 조은주씨와 함께 오후 6시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10여분 만에 떠났다. 경영권 분쟁 등으로 사이가 소원했던 두 사람은 지난 2018년 10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국정농단·경영비리 재판 2심 선고 때 마주친 후 1년3개월만에 병원에서 재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명예회장의 부인인 하츠코 여사는 신 명예회장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주부터 곁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빈소는 신 명예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키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을 시작으로 계열사 대표와 재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박준 농심 부회장,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도 공식 조문 전임에도 빈소를 다녀갔다.


이와 함께 민명기 롯데제과 대표와 강성현 롯데네슬레 대표 등 계열사 대표들도 서둘러 빈소를 찾았다. 소진세 교촌F&B 대표 등 재계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신 명예회장의 장례는 그룹장으로 치뤄진다. 발인은 오는 22일 오전 6시로 영결식은 같은 날 오전 7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장례식의 명예장례위원장으로는 이홍구 전(前) 국무총리와 반기문 전(前)UN사무총장이 선임됐다. 장례위원장은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와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가 맡기로 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장례는 롯데그룹의 창업주인 고인을 기리고자 그룹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면서 "평소 거화취실을 실천해 오신 고인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덧붙였다. 거화취실은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하라는 사자성어로 신 명예회장은 액자에 넣어 집무실에 걸어둘 만큼 '실리 경영'을 늘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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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명예회장 젋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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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명예회장이 롯데그룹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근대기 국내 산업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22년(주민등록상) 경남 울산의 재력가 집안에서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46년 와세다대학에서 화학과를 전공했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초기 사업 자금을 마련한 데는 성실한 인품이 주효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일본에 건너가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했을 당시 배달 시간을 잘 지키는 인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일본 재력가로부터 초기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1948년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한 이후 1959년 롯데 상사, 1961년 롯데 부동산, 1968년 롯데 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일본의 10대 재벌로 성공 신화를 썼다.


일본에서 경영인으로 성공을 거둔 이후인 1960년대 국내로 사업 방향을 돌렸다. 1966년은 사업을 국내로 확장하며 1966년 롯데알미늄을 설립해 기틀을 닦았다. 특히 1967년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제과를 창립하며 모국 투자를 시작한 기념비적 해다. 1973년 호텔 롯데ㆍ롯데 전자ㆍ롯데 기공, 1974년 롯데 산업ㆍ롯데 상사ㆍ롯데 칠성 음료 등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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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 설립 추진 회의를 진행 중인 신격호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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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는 롯데 건설, 롯데 삼강, 롯데 햄, 롯데 우유, 1979년 롯데리아(현 롯데지알에스), 롯데 쇼핑, 1980년 한국 후지 필름, 1982년 롯데 캐논ㆍ대홍기획 등을 설립했다. 1983년 롯데장학재단을 설립해 기초과학 분야 전공 학생 지원을 시작했다. 1985년에는 롯데 캐논을 설립했다. 2011년 롯데그룹 총괄회장에 올랐다. 2015년 일본 롯데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에서 명예회장으로 직책이 바뀌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신 명예회장은 1948년 일본 롯데를 설립한 이후 가장 늦게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1세대 기업인으로 한국에 서비스업을 뿌리내리고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국내 관광업계 발전을 주도한 공로로 1981년 동탑산업훈장을, 1995년에는 관광산업계 최초로 금탑산업훈장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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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 기념식에 참석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내외와 신동빈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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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의 창업주지만 가족사의 아픔도 있다. 2015년 불거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인 일명 '왕자의 난'으로 수모를 겪은 것. 본인과 장차남, 장녀, 사실혼녀 등 일가족이 한꺼번에 법의 심판대에 오르기도 하는 등 그가 이뤄 놓은 롯데그룹의 이미지가 대내외적으로 크게 악화되기도 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떠난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원톱 체제 하에 흔들림없는 경영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2월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했으며 당해 6월 롯데홀딩스정기 주주총회에서도 무난하게 이사로 재선임됐다.


한편, 신 명예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와 장녀 신영자 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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