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롯데껌으로 시작 재계 5위 일궈…두 아들 다툼으로 ‘굴곡진 말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걸어온 길]

일제강점기 밀항선 타고 일본행

와세다대 졸업…풍선껌으로 성공

한일 수교 뒤 귀국해 롯데제과 세워

한·일 오가며 ‘셔틀경영’ 신조어 낳아

신동주·동빈 경영권 싸고 ‘형제의 난’

롯데홀딩스 대표 해임 뒤 일선 물러나

불법 순환구조에 ‘일본기업’ 논란도

배임·횡령 등 실형 선고 뒤 ‘형집행정지’ 상태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일 99살로 별세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껌 사업을 시작으로 70년 가까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오가며 사업을 확장해 롯데를 국내 재계 5위로까지 성장시킨 인물이다.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평가되지만 말년엔 두 아들의 경영권 분쟁과 본인의 구속 위기 등으로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1921년 경남 울산에서 농부의 아들로 5남5녀 중 맏이로 태어난 신 명예회장은 1942년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넘어가 와세다대학교 화학공학과 야간부를 졸업했다. 1944년 윤활유 공장을 차리며 사업을 시작했다가 미군기의 폭격으로 공장이 전소하는 일을 겪은 뒤 1948년 도쿄에서 ㈜롯데를 설립했다. 롯데는 신 명예회장이 대학 시절 인상 깊게 읽었던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샤를로테’(Charlotte)에서 따온 것이다. 롯데그룹은 “‘모두에게 사랑받은 샤를로테처럼 고객에게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게 신 명예회장의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 주일미군한테 인기가 있었던 풍선껌을 만들어 성공을 거둔 신 명예회장은 1965년 한-일 수교로 한국에 투자할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한국에도 진출했다. 이후 롯데호텔, 롯데쇼핑 등 식품, 유통은 물론 관광과 건설, 화학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힌 롯데는 국내 재계 5위 그룹으로 규모가 커졌다. 신 명예회장은 2011년 전까지 홀수 달에는 한국에서, 짝수 달은 일본에 머물렀는데 이로 인해 ‘셔틀경영’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폐쇄적인 경영 방식과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입길에 올랐다. 롯데그룹의 한국, 일본 계열사는 꼬리에 꼬리를 문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06년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쇼핑을 상장하려 하자 신 명예회장이 “왜 회사를 남에게 파느냐”고 말했다던 일화도 전해진다.

신 명예회장의 말년은 굴곡이 컸다. 2015년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 사이에 이른바 ‘형제의 난’이 벌어졌다. 신 전 부회장의 편에 섰던 신 명예회장은 2015년 신동빈 회장이 연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이사회를 통해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일본 법인이 있다는 점이 부각되며 롯데그룹의 국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구속의 위기도 있었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을 가족에게 몰아주고 딸 신유미씨에게 허위 급여를 지급하는 등 횡령·배임 혐의로 지난해 10월 징역 3년의 실형이 확정됐으나, 고령과 치매 등 건강상의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최근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등에서 주로 생활해왔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국내 ‘창업 1세대’ 경영인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엘지(LG) 회장, 최종현 에스케이(SK) 회장에 이어 신 명예회장까지 고도성장기를 이끈 것으로 평가되는 이들이 모두 별세했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창업 1세대 기업인으로서 선구적인 안목과 헌신으로 롯데를 국내 최고의 유통·식품 회사로 성장시켰다”며 애도를 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불모지였던 백화점을 개척해 중소기업의 판로 확대에 기여하고, 한국의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호텔 분야를 선구적으로 개척했다”며 고인을 기렸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네이버에서 한겨레 구독하기
▶신문 보는 당신은 핵인싸!▶조금 삐딱한 뉴스 B딱!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