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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탈법에도…시정 어려운 ‘주방용 오물분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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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찌꺼기 전량 배출 ‘불법’…과장 광고로 소비자 현혹

환경부, 일반 가정서만 쓸 수 있어 단속·적발 어려워 ‘골치’

경향신문

“일부 홈쇼핑 방송과 온라인 판매점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전량 배출해도 되는 것처럼 안내하는 등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혼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환경부는 지난해 9월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 11개 홈쇼핑 채널, 네이버·다음 등 포털 사이트, 쿠팡을 비롯한 온라인 쇼핑몰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불법 주방용 오물분쇄기 관련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불법·과장광고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데다, ‘일반 가정’ 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제품이다 보니 단속이나 적발이 쉽지 않아 골치를 썩이고 있다.

싱크대에 부착하는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음식물 찌꺼기를 분쇄해 오수와 함께 배출하는 기기를 말한다. “음식물 찌꺼기, 이제 싱크대에서 바로 해결하세요” 같은 제품 광고만 보면, 별도의 ‘2차 처리’ 없이 한번에 음식물 쓰레기를 100% 분쇄해 하수구로 내려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사용에 관한 규정을 담은 하수도법과 환경부 고시에 따르면, 합법적인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1차 처리기를 통해 전체 음식물 쓰레기의 최대 20%만 분쇄해 하수로 내려보낼 수 있다. 2차 처리기에 모인 나머지 80%의 음식물 쓰레기는 기존과 같이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

‘미생물 분해’ 방식의 분쇄기 일부를 제외하면 “개수대 구멍에 음식물 찌꺼기만 넣으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식의 광고는 대부분 불법이다. 특히 ‘해외 직구’ 제품의 경우 2차 처리기가 아예 없이 100% 분쇄해 하수로 흘려보내는 방식이 많아 불법성이 더 크다. 2차 처리기가 있는 국내 제품의 경우에도 실제 설치 시에는 2차 처리기를 떼고 설치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12월 말까지 환경부 인증을 통과해 판매·허가된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41개 업체의 96개 제품이다.

불법 주방용 오물분쇄기의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일반 가정’ 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제품이다 보니 불법 제품에 대한 단속이나 적발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환경부가 2017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단속한 불법 주방용 오물분쇄기 업체 수는 681개지만, 위반 사실이 적발된 업체는 12곳뿐이었다. 같은 기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점검 수는 234건, 적발된 위반 건수는 2건에 불과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개인정보 때문에 오물분쇄기를 ‘설치’한 곳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없어서, 제조업자 중심으로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속 건수는 거의 없지만, 한국상하수도협회에 보고된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실적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2017년 판매대수는 2696대, 2018년 7753대, 2019년 4만9342대로,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판매가 6배 늘었다.

환경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설치 시 ‘2차 처리기’를 임의로 분리할 수 없도록 ‘일체형’으로 제작하도록 하는 등 관련 고시 개정을 준비 중이다.

하수도법이 원칙적으로 주방용 오물분쇄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데, ‘고시’를 통해 오물분쇄기 사용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수질오염 방지를 위해 주방용 오물분쇄기 사용 금지법(하수도법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를 단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법이 아닌 고시를 개정해 꼼수로 판매를 허가한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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