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1 (수)

[특파원리포트]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대만 도처에 망국 위기론” / ‘중국식 통일’에 대한 공포 커져 / 차이 총통 역대 최다표로 연임 / 中 對대만 정책 성공할지 의문

대만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바로 ‘무기력’이다. 1949년 압도적인 전력 차에도 불구하고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군은 결국 마오쩌둥(毛澤東)의 홍군에 패해 대만으로 달아났다. 당시 장제스의 군대는 공식적으로 약 250만명이었다. 또 미국이 제공한 최신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반면, 홍군은 1933년 대장정 당시 8만명 정도로 알려졌다. 무기도 역시 변변치 못했다.

국민당군이 홍군에게 진 것은 장제스의 무능과 부패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 기자 출신인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쓴 ‘콜디스트 윈터’에는 무능하고 부패했던 국민당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나온다. 이를 알면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국민당군을 지원했던 미국의 실패한 정책도 언급된다.

세계일보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으로 중국에 온 당대 최고의 군사전문가였던 조지 마셜은 “우리가 공급해준 무기의 40%를 적의 손에 내주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홍군은 “국민당군이 우리 부대의 ‘군수품 보급병’이라고 조롱했다고 한다. 장제스의 군사고문이었던 데이비드 바는 “국민당보다 공산당이 우리가 준 무기를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훗날 회고했다.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1990년대 초 대학교 재학 당시 유럽 배낭 여행을 갔을 때다. 대만 대학생을 우연히 만나 3일 정도 같이 여행했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이동하는 밤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았다. 비슷한 나이 또래여서 의기투합이 됐다. 3일 동안 파리 여행을 같이 다니면서 별별 이야기를 다 했다. 당연히 국가와 미래, 취업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대만은 희망이 없다. 답답하다. 미국 시민권을 얻어 그곳에서 사는 것이 꿈이다.” 그 친구 희망대로 미국에 살고 있는지는 모른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하지만 한국이 답답하고 희망이 없어 미국으로 가겠다는 생각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지난 10일부터 13일 대만을 찾았다. 대만 총통 선거 취재를 위해서다. 대만은 처음이다. ‘일본어를 사용하는 중국인’이라는 말답게 사람들은 친절했다. 중국과는 다른 자유민주주의 체제 특유의 여유와 부드러움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대세는 이미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으로 기울어진 상황이다. 궁금했던 것은 ‘대만인’ 밑바닥 생각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차이 총통 민진당은 참패했다. 차이 총통 정책에 반대하는 대만 여론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1년 반 만에 전세가 역전됐다. 그것도 차이 총통은 역대 최다 득표라는 기록도 얻었다. 학생, 교수, 식당주인, 외교관, 교민, 택시기사 등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만난 듯하다.

해답은 ‘중국식 통일’에 대한 공포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와 처음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이 차이잉원 지지자라고 밝혔다. 기자라고 하니 자기 이름을 사용해도 좋다고도 했다. 그는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 될 수 있다. 지금 도처에는 ‘망국 위기론’이 커지고 있다. 공산당이 제안하는 것을 믿으면 안 된다”고 했다. 11일 아침 투표장을 찾았다. 4, 5명 여대생이 함께 투표하러 왔다. 잠시 길에서 취재했다. 이들은 “한궈위(韓國瑜)가 싫다. 대외정책에 대한 입장이 모호하고, 중국과 가깝다. 우리는 차이 총통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했다. 또 “시위를 제압하는 홍콩 경찰들이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폭력적으로 학생들을 대할 수 있는가”라며 홍콩 사태에 분노하기도 했다.

11일 밤 차이 총통 연임이 확정된 타이베이 베이핑 동루는 한 마디로 축제를 방불케 했다. 선거가 끝난 오후 4시 직후부터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북소리와 노랫소리, 함성에 귀가 따가웠고, 인파 속에 휩쓸려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수천, 수만의 대만인들이 몰려와 차이 총통을 연호했다. 가족 단위 지지자도 많았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주위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를 따라 외치는 모습이 정겹게 보이기도 했다.

차이 총통의 연임 확정으로 중국의 대대만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홍콩처럼 대만을 완전히 무릎 꿇게 하겠다”며 더 강력하게 대만을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중국 정책이 성공할지 의문이 든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