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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정용덕칼럼] 공공 리더의 평가와 사회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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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수행의 전 과정 평가 방법 / 완벽한 인물 기대하기 어려워 / 특정 ‘사건’ 내용 초점 둔 평가로 / 韓 역사 공과 가리는 게 현실적

지난 연말에 작고한 김광웅 전 서울대 명예교수의 빈소에서 그의 마지막 저서인 이승만 평전을 한 권 전해 받았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이 다니던 배재고교의 ‘우남학관’ 신축 기념식에 참석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이승만 대통령의 축사 장면을 기억하지만, 그 후 대학생이 되어 ‘4·19 학생의거’에 참여하여 최루탄과 총탄이 날아다니는 경무대 부근까지 진출했던 기억 또한 생생하다고 쓰고 있다. 이승만에 대한 그의 이와 같은 중첩적인 기억은 평전 전체의 흐름에 기조가 되는 듯하다.

세계일보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행정학


필자는 수년 전에 한 언론사가 주관한 대통령 리더십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참여자들이 먼저 토론한 다음에 각자 짧은 글을 한 편씩 써서 싣기로 했었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 역대 대통령들의 공과 과를 간략하게나마 모두 평했던 필자의 글은 실리지 않았다. 토론에서는 서로 이해가 되었던 내용이 지면에는 오르지 못한 이유가 아마도 ‘진영논리’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공공 리더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접근방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가치 양극화와 공공갈등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미국 남가주대(USC)의 테리 쿠퍼 교수와 그의 동료들이 제시한 이론을 참고할 만하다. 그들에 의하면 공공 리더를 평가할 때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리더가 수행한 공직 전반에 걸친 ‘과정’에 초점을 둔 평가와 특정 시점에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그가 행한 일의 내용에 초점을 둔 평가가 그것이다.

첫째, 공공 리더를 그가 공인으로서 활동한 전 과정에 대해 평가하는 방법이다. 동서고금에서 공인으로서의 전 과정에서 훌륭한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업적도 남긴 인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공자와 간디 등의 성인급 인물들이 우선 떠오른다. 그러나 공공 리더가 모두 성인 수준의 인물이 되기를 바라기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마틴 루서 킹 등이 물론 큰 업적을 남긴 지도자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사생활을 비롯하여 전 과정에 걸쳐 존경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사회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일관성을 지키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파란만장했던 우리의 근현대사가 전형적인 예다. 그렇게도 갈망하던 해방 정국에서 나름의 신념을 지키다가,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쓰러진 김구 전 임시정부 주석을 비롯하여 아까운 인물이 적지 않다.

둘째, 공공 리더가 특별히 중요한 상황에서 공익과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힘든 결정을 내리고 실천에 옮겼는지를 가려내는 방법이다. 얼마 전에 작고한 노신영 전 국무총리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유능하지만 보신주의에 철저한 전형적인 한국 관료제의 일원이던 그가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 ‘5공’ 정권의 국무총리로 ‘승진’한 것을 두고 대단하게 평가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역시 ‘승진’에 의해 최고의 공직까지 오른 최규하 전 대통령을 출중한 리더로 보는 사람이 드문 이유와도 같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를 공공 리더의 한 예로 논의하게 되는 대목은 그가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정치범 김대중’을 형 집행의 위기로부터 필사적으로 구출해 낸 일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공공 리더라면 공직 수행의 전 과정에서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했기를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물론 당연하다. 전통적으로 가문 등 출신 성분까지도 중시하던 우리의 문화에서 어쩌면 공직에 들어서기 이전이나 이후까지도 포함한 전 생애에 걸쳐 그가 완벽한 인간이기를 바라는 결벽성 수준의 기대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이 겪어 온 험난한 근현대사에서 공인으로서의 전 과정에서 완벽한 인물을 기대하기란 여의치 않다.

그렇다면, 당시에 직면했던 중대한 사건 혹은 사건들에 대해 공인이 결정하고 실천에 옮긴 내용을 중심으로 그를 평가하고 그 점에 대해 공과를 가리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에서 그때그때 국가발전에 나름대로 공헌했던 인물을 다수 발굴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사회의 통합에도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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