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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목멱칼럼]경직된 고용이 만든 역피라미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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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이데일리

이상호 건설산업연구원 원장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대학에서 조직이론을 배울 때 조직의 기본구조는 피라미드(△) 같다고 했다. 책임과 권한에 따라 조직은 몇 개의 계층으로 나누어지고, 위로 올라갈수록 상급자 수는 줄어들어서 마침내 맨 꼭대기에는 대통령이나 CEO 같은 최고위자가 딱 1명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조직사회는 역피라미드(▽)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방문했던 어떤 건설회사는 전체 직원 중 부장급 이상이 60%라고 한다. 십수 년을 근무한 40대 중반의 과장이 막내인 회사도 있다고 한다. 기업체만 그런 게 아니다. 학회나 포럼을 가봐도 젊은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고 연로하신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를 종종 본다.

전통적인 조직이론에서 피라미드 조직은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집행조직에 적합하고, 역피라미드 조직은 연구나 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참모조직에 적합하다고 한다. 20∼30년 전에 배운 조직이론이다. 그 사이에 우리 조직사회가 모두 참모조직이 된 것도 아닌데 역피라미드로 바뀐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고령화다. 건설산업의 경우 2008년에 한국건설기술인협회에 등록된 20~30대 건설기술인 비중은 전체의 56.3%를 차지했지만 2017년에는 28.7%로 줄었다. 반면에 40~50대는 39.5%에서 60.9%로, 60대 이상은 4.0%에서 10.3%로 늘었다. 고령자 비중이 늘어난 만큼 고령의 고직급자가 많은 것을 당연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가 우리보다 먼저 도래한 유럽 선진국의 조직구조가 역피라미드인 것은 아니다. 영국의 혁신기업으로 유명한 다이슨은 엔지니어의 평균 연령이 26세라고 한다. 유럽의 최고 정치 지도자 중에는 30대나 40대도 꽤 있다. 따라서 역피라미드 조직사회가 도래한 이유는 고령화 탓만이 아니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을 때마다 신규 채용을 줄였다. 고용의 경직성도 큰 원인이다. 제아무리 무능하고 불성실해도 해고할 수 없다면 정년까지 근무하는 고령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있어도 무능하고 불성실한 근로자들이 제자리를 굳건히 지킨다면, 신규 인력의 채용을 줄이게 된다. 게다가 성과급이나 직무급제를 대신하여 호봉제가 근간이 되어 있으면 나이와 근속연수가 많을수록 급여도 높아지기 때문에 직장을 중도에 그만둘 이유가 없다. 지난 20여 년간 이런저런 사유가 누적되다 보니 역피라미드 조직사회가 형성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피라미드 조직사회의 병폐는 숱하게 지적돼 왔다.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군대 조직이나 정부 관료제에 대한 비판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역피라미드 조직사회에 대한 비판은 아직 많지 않다. 오히려 정년을 늘리자거나 퇴직한 고령자의 경험을 사장시키지 말고 재활용하자는 논의가 무성하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이 같은 논의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청년 실업은 해소되기 어렵고 역피라미드 구조는 더욱 공고해진다는 부작용도 있다.

역피라미드 조직사회는 실행력과 창의성이 떨어진다. 말만 많고 지시하는 고직급자는 많은데 실제로 일하는 사람이 적으면 조직의 성과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조직도 미래지향적이기보다는 현상유지적이거나 퇴행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또한 호봉제에서는 고령화된 고직급자가 많을수록 임금 비중이 높고 노동생산성은 낮다. 그나마 재정 여력이 있는 일부 민간기업은 명예퇴직 등을 통해 조금이라도 문제를 해소해보고자 한다.

지난 20여 년간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원인은 역피라미드 조직사회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역피라미드 조직사회를 피라미드 조직사회로 바꾸고자 한다면 젊은 사람의 신규 충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경제나 기업의 성장이 큰 폭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느 시점에서는 우리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회복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호봉제를 대신해 성과급이나 직무급제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최소한 정년 시점까지는 열심히 직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건전한 직업윤리를 정착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수축사회’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역피라미드 조직사회를 혁신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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