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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설진훈 칼럼] 善因惡果 부동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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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선인선과(善因善果)·악인악과(惡因惡果)’. 선한 의도는 좋은 결과를, 악한 의도는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불교 용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취지가 옳다고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법이 없다. 특히 나라를 다스리거나 행정을 펼 때 더욱 그렇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나쁘면 백성에게는 말짱 도루묵이다. 소위 말하는 ‘선인악과(善因惡果)’다. ‘피터팬 증후군’만 낳았다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보호정책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되면 어린아이처럼 각종 지원을 받는다. 중견기업으로 크면 이런 보호막이 사라지기 때문에 스스로 성장하기를 거부한다.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성장과 경쟁 의지를 막는 독약으로 변질됐다는 얘기다.

정반대로 ‘악인선과(惡因善果)’도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올림픽을 따온 것은 국민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려는 3S 정책 중 하나였다는 설이 있다. 의도가 불손했는지 몰라도 효과는 만땅이었다. 경제변방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돌고 돌아 민주화라는 뜻밖의 선물까지 안겨줬다. 해외 언론들 시선이 쏠리자 1987년 6월 항쟁 때 무력 진압이 어려워졌고 결국 군부 독재는 무너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유난히 선한 인상과 심성을 가졌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문 정부 핵심 정책들도 대부분 ‘약자 보호’라는 선한 취지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는 취임사도 여전히 유효하리라 믿고 싶다. 하지만 선한 의지가 꼭 군주의 제1 덕목이라고 보긴 어렵다. 때론 지나친 도덕적 우월감이나 자기 확신이 악수(惡手)와 아집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또다시 집값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단순히 가격이 안정되도록 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서민들이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급등한 일부 지역 집값은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남 3구 집값 등을 취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친 집값과 투기 바람 탓에 비생산적인 곳으로 돈이 몰리는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다.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겠다고 대통령이 틈날 때마다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것 또한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서민들이 대통령을 믿고 집 안 사고 기다려도 되느냐”는 기자 질문에 문 대통령은 즉답을 피했다.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이다. 강력한 의지라고 믿어달라”고 돌려 말했다. ‘뜻은 강한데 얼마나 잡힐지는 의문’이라는 뉘앙스로 들렸다.

원래 ‘선인악과’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탁상행정의 사생아라 했다. 교과서에는 강력한 규제로 수요를 누르면 가격은 떨어진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주택거래허가제’ 같은 우격다짐으로 억누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살기 좋고 값 오를 집에서 살고 싶다는 심리를 죄악이라 탓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강남이 문제라면 강북의 재개발·재건축 규제라도 확 풀어 수급을 맞추면 될 일이다. 중세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선한 의도가 나쁜 결과를 초래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좋은 목적을 위해 나쁜 수단을 쓰는 건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규제 폭탄은 응급처방이지 결코 올바른 수단은 아니다.

[주간국장 jinh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2043·설합본호 (2020.1.23~2020.2.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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