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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JAPAN NOW] 일본에 부는 인력 감축 바람-AI 시대 대비…日 흑자기업까지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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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일본 대기업에서 부본부장을 맡고 있던 A씨(50)는 최근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자발적인 퇴직이다. A씨는 “100세 시대라는데 새로운 일을 하려면 그래도 지금처럼 경기가 좋을 때 시작하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고 말했다.

# B기업은 지난해 말부터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45세 이상 직원 200명이 대상이었지만 회사가 예상한 인원보다 더 많은 신청이 쏟아졌다. B사는 위로금 명목으로 최장 10년간 급여를 약속했다. 60세까지는 현재 임금의 30~40% 수준을 지급하고 60세 이후로는 월 10만엔을 지급한다는 약속이었다. 최대 6000만엔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일본에서 때아닌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도쿄상공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35개 상장사에서 조기·희망퇴직 등의 형태로 약 1만1000명 규모의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전년도(4126명)의 2.7배가량에 해당한다.

주목할 점은 과거 적자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했다면 요새는 실적이 좋은 기업도 인력 조정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 35곳 가운데 절반 이상인 20개사가 흑자 기업이었다. 전체 구조조정 인원의 80%에 달하는 9100명이 흑자 회사 소속이었다. 구조조정이 환영할 일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비장한 분위기도 아니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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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회사 측을 따져보자. 인공지능(AI) 등 기술 발달에 따라 필요 인력 자체가 줄고 있다. 여기에 회사들이 원하는 첨단기술을 익힌 인재는 기존 임금체계로는 확보가 쉽지 않다. 일본에서 연공서열 급여체계를 바꾸자는 논의가 많아지는 이유다. 문제는 급여체계를 바꾸는 과정에서 기존 인력, 특히 고임금을 받고 있으나 첨단기술 등에는 약한 중장년층 반발이 크다는 점이다. 결국 회사에서 택한 방법이 위로금 등을 지급하면서 구조조정을 실시해 이들 연령대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흑자가 나는 상황에서 진행하는 셈이다.

▶구조조정 진행한 35곳 중 20곳 흑자 기업

주가이(中外)제약은 2018년까지 2년 연속 사상 최고 순익을 경신했지만 지난해 4월 45세 이상을 대상으로 조기퇴직을 실시해 172명이 회사를 떠났다. 아스텔라스(astellas)제약 역시 2018 회계연도 순익이 전년 대비 35% 증가했지만 지난해 3월 7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주가이제약에서는 “종래 기술과 전문성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며 인력 구조조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직원 입장에서도 퇴사를 통한 전직은 장기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다. 일본 사회 전반적으로 일손 부족이 심화되다 보니 전직이 어렵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 특히 대기업 등에서 실무를 익힌 중장년 근로자의 경우 당장 업무 투입이 가능해 중소기업에서 가장 선호하는 인력이다. 일본의 이직 중개업체 대형 3사에 따르면 지난해 4~9월 기간 중 41세 이상의 전직이 전년에 비해 30%나 늘었다. 전체 연령대 중에서 가장 빠른 증가세다.

인력 구조조정과 함께 성과형 임금제도 도입 등 기존 인사정책의 변화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NEC는 지난해 3월까지 1년간 중장년을 중심으로 3000명을 정리했다. 대신 신입사원이라도 최대 1000만엔(약 1억1000만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후지쯔 역시 2850명의 인력을 줄이는 대신 성과를 내는 직원에게는 연봉 4000만엔까지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AI의 도래로 인한 일자리 감소 추세에서 한국이라고 자유롭지는 않다. 다만 우리 기업들은 일본과 같은 구조조정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전직이 쉽지 않은 사회문화도 있지만 이들을 받아줄 견실한 중견기업들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기업들이 활기를 찾을 수 있는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도쿄 = 정욱 특파원 woo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2043·설합본호 (2020.1.23~2020.2.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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