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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TOPIC] 도 넘은 지자체 현금 복지…어린이집 소풍비·장수축하금 ‘무차별 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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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비, 해녀수당, 효도수당, 청년수당….

전국 지자체마다 온갖 현금 복지 수당을 신설하거나 금액을 늘리면서 논란이 뜨겁다. 당장 주민들은 환영하지만 혈세를 투입한 무상 복지 규모가 커질수록 지자체가 재정난에 허덕일 우려가 크다.

경기도는 교통비 지원을 위해 만 13~18세 청소년에게 연간 최대 8만원, 19~23세는 최대 12만원을 지역화폐로 돌려준다. 화성시는 청소년 9300명의 마을버스비를 지원해주는 정책까지 도입했다.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는 지자체도 있다. 안산시는 대학생의 등록금 절반(최대 200만원)을 지원해준다. 이른바 ‘반값 등록금’ 제도다. 성남시는 관내 공립 도서관에서 연 6권 이상 책을 대출하면 2만원 지역상품권을 주는 ‘독서수당’까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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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자체 현금 복지가 급증하면서 지자체마다 재정 악화 우려가 커졌다. 사진은 전국 지자체장들이 지난해 10월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복지대타협 국회토론회’를 여는 모습. <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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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는 올해부터 모든 어린이집 아동에게 소풍비를 지원한다. 총 2100명이 연간 28만원씩 받는다. 지자체에서 어린이집 현장학습비를 지원해주는 것은 중구가 전국 최초 사례다. 중구는 어린이집에서 진행하는 미술, 음악, 체육 등 특별활동비도 절반가량을 지원하기로 했다.

효도수당을 도입하는 곳도 부쩍 늘었다. 서울 마포구는 올해 ‘효행장려금’을 신설했다. 100세 이상 부모를 부양하는 구민에게 매년 20만원씩 지원해준다. 종로·성동·노원구 등도 100세가 되는 구민에게 30만~100만원가량 ‘장수축하금’을 준다. 대전광역시는 100세 노인에게 일시적으로 100만원의 장수 축하금을 지급해왔다.

이름이 낯선 ‘해녀수당’도 있다. 제주도는 만 70세 이상 해녀에게 월 10만원, 만 80세 이상은 월 20만원씩 해녀수당을 지급한다.

전남 해남군이 처음으로 도입한 농민수당도 전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충남도는 농임어업인에게 농가당 60만원씩 수당을 주기로 했다. 농민수당은 현금이나 지역화폐로 지급된다. 전북도 역시 농민수당을 60만원씩 준다. 2년 이상 주소를 둔 농가 중 실제 영농에 종사하는 농가가 대상이다.

중장년층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받는 수당도 다양하다. 서울시는 아직 취업하지 못한 청년에게 청년수당을 준다. 가구소득이 중위소득 150% 이하인 만 19~34세 미취업 청년에게 월 50만원씩 6개월간 청년수당을 지급한다. 청년수당 대상 인원이 기존에는 7000명이었지만 최근 3만명으로 대폭 늘렸다.

출산장려금은 지자체마다 경쟁이 붙어 해마다 액수가 올라가는 추세다. 특히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지자체가 출산장려금을 대폭 늘리는 분위기다. 경북 성주군은 첫째 아이를 낳으면 360만원, 둘째 720만원, 셋째 1800만원의 양육지원금을 준다. 넷째를 낳으면 무려 2520만원을 받는다. 경남 거창군은 셋째만 낳아도 2050만원을 지급한다. 서울 동대문구는 셋째 이상이 초중고교에 입학할 때 각각 30만원, 50만원, 100만원씩 입학축하금을 준다. 이 예산만 2억8850만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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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자체 현금 복지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각 지자체가 신설한 보편적 현금 복지 사업은 2017년 30건에서 2018년 55건, 2019년 6월 60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들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 규모는 2014년 114억7700만원에서 2019년 1637억3400만원으로 급증했다. 지방세 수입 대비 현금 복지 비율이 10%가 넘는 시군구만 26곳이다.

심지어 현금 복지를 받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2019년 3분기 기준 공적 이전소득을 받은 가구에서 4대 공적연금(국민·공무원·군인·사학연금)과 연말정산 환급금을 받은 가구를 제외한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5.1%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지자체로부터 각종 현금 복지를 받는 가구 비율을 의미한다.

총선을 앞두고 지자체들이 선심성 복지를 무분별하게 늘릴수록 지방재정은 점차 악화될 수밖에 없다.

지방재정 통합 시스템 ‘지방재정365’에 따르면 전국 재정 자립도는 2017년 53.68%에서 2018년 53.41%, 2019년 51.35%로 점차 하락하는 추세다. 그나마 재정 여건이 낫다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평균 자립도도 2018년 30%에서 지난해 29%로 떨어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재정이 어려운데도 인근 지자체가 복지제도를 신설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주민 요구가 쏟아져 울며 겨자 먹기로 현금 복지를 도입하는 분위기”라고 꼬집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들도 머리를 맞댔다. 현금 복지정책을 재검토하기 위해 힘을 모아 지난해 7월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국민 전체에 적용되는 수당 성격의 복지는 중앙정부가 일괄적으로 시행하고 지자체는 각각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도록 하는 이른바 ‘복지의 분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 간사인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은 “기초단체 간 과도한 현금성 복지 경쟁으로 ‘복지의 빈익빈 부익부’를 불러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복지 역할 분담과 함께 기초단체 역할이나 재원 분담 정책 조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포퓰리즘식 복지를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은 국가가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만큼 ‘지자체 파산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중앙정부가 부실 지자체 예산 편성권을 박탈해 자치단체장 책임을 묻는 제도로 미국, 일본 등이 도입했다. 파산의 불이익은 지방세 증액, 복지 축소 등으로 주민에게 돌아가는 만큼 부실 지자체에 경종을 울릴 것이란 기대다. 지방의회가 과도한 지자체 현금 복지 견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지방 소멸 시대’를 막으려면 무분별한 현금 복지보다는 수혜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는 서비스 중심 복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설득력 있다. 당장 몇 푼의 현금이 아닌 주민들의 지속적인 소득을 보장해주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유치에 힘쓰는 것도 필요하다. ‘달콤한 현금 주는 지자체’보다 ‘기업 하기 좋은 도시’ 타이틀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자체는 지역에 맞는 복지 서비스만 제공하는 방향으로 재정 부담을 줄여야 한다. 중앙정부가 나서서 무분별한 현금 복지 사업을 벌이는 지자체 지원을 줄이는 식으로 규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밝혔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2043·설합본호 (2020.1.23~2020.2.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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