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지난 7일 물러났다. 임기가 1년 남짓 남았는데, 4월에 있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그만둔 것이다.
금융업계에서는 다들 예상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국민연금은 과거에도 이사장 교체가 잦았기 때문에 김 전 이사장에 대한 기대가 처음부터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전 이사장을 포함한 총 16명의 역대 국민연금 이사장 중 약 80%(13명)는 중도 사퇴했다.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 전 이사장은 국민연금 본부이자 자신의 지역구였던 전주의 기관장으로 임명된 이후 업무와 상관없는 지역구 활동을 벌여 임기 내내 총선 출마 의혹을 샀다.
국민연금 임직원들도 김 전 이사장의 사임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기금운용본부장(CIO)이 기금운용을 전담하는 체제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이사장의 공백에도 기금운용에는 차질이 없을 거라고 한다. 국민연금 노동조합은 오히려 김 이사장을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식견이 뛰어나고 노사 상생을 실천한 사례로 추켜세우며 새 이사장의 롤모델로 내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국민연금 조직의 안정성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712조원의 기금운용을 총괄하는 CIO도 임기를 채우지 않고 조직에서 이탈하는 게 ‘정상’이 됐다. 1999년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총 8명의 CIO 중 임기를 제대로 마친 CIO는 2대 조국준씨와 5대 이찬우씨 단 두 명이다. 핵심 운용인력도 매년 수십명씩 이탈하고 있다. ‘이사장도 나가는 데 나 하나쯤이야’, ‘이사장도 없는 마당에 운용역 하나 나간다고 해서 달라질까’하는 인식이 임직원들 사이에 가랑비 젖듯 자리잡은 것이다.
잦은 인력 이탈로 국민연금 개혁과 새 정책은 뒤로 밀려나게 됐다. 고령화·저출산이 가속화되면서 납부자보다 수급자가 더 많은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김 전 이사장이 추진했던 국민연금 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말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된 적극적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경영계와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정책 지연에 따른 비용은 2200만명의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국민연금 출신의 한 인사는 "CIO가 투자 리스크 등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한다면 이사장은 조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각계각층과 소통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자리인데 정계 진출을 위한 공직 스펙을 채우는 자리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이사장이라는 자리가 더는 정치인 이력서에 넣을 한 줄짜리 경력으로 자리 잡아서는 안 된다.
이경민 기자(sea_throug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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