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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연합시론] 판사도 정치는 할 수 있으나, 일정한 유예기간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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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전·현직 판사들의 잇단 총선 출마 행보에 법원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농단' 의혹을 세상에 알린 이탄희 전 판사를 총선 인재 10호로 영입했다. 이 전 판사는 2017년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난 뒤 '사법부 블랙리스트' 문건 등의 존재를 알게 되자 이에 항의해 사직서를 냈던 인물이다. 사직서가 반려됐음에도 발령은 취소됐고, 이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드러나면서 결과적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도화선을 제공했다. 사법개혁에 목소리를 냈던 이수진 수원지법 부장판사와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도 앞서 사직했는데 모두 집권당의 영입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처럼 의원면직한 장동혁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자유한국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법조계의 울타리를 넘는 판사들의 전직과 신분 이동은 하루 이틀 된 것은 물론 아니다. 이번 일이 특히 세간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이탄희 전 판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총선 공직 사퇴시한에 임박해 법복을 벗고 급하게 정치권에 입문했다는 점이다. 결은 다르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법관들의 청와대 직행 문제도 있었다. 권위주의적 사법행정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 온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 김형연 부장판사가 사표를 낸 지 이틀 만에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지난해 5월 법제처장에 임명됐다. 그의 후임 비서관 역시 인권법연구회 출신 김영식 전 부장판사가 물려받았다. 이처럼 현직 판사들이 청와대로 직행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커지자 이를 법으로 금지하는 상황까지 왔다. 국회가 최근 본회의에서 법관 퇴직 후 2년간 대통령 비서실 직위에 임용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의결한 것은 현직 판사들이 사표를 내기 무섭게 청와대로 들어가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판사들의 공직 출마도 사직 후 일정 기간이 지나야 가능하도록 규정을 두는 방안을 검토해 봄 직하다. 어차피 헌법에 보장된 정치 활동 자체를 막을 수 없는 만큼 현직 판사들의 정치권 직행을 어느 정도 제한하면 불필요한 논란과 부작용을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탄희 전 판사는 "재야에서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알리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한계를 느꼈다"고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이유를 밝혔다. 법원 안에서나 밖에서나 일관되게 사법개혁 필요성을 주장해 온 그의 모습에 비춰보면 진정성을 믿고 싶고 수긍이 가는 면도 있다. 참정권 차원에서도 판사들의 정치적 선택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생각하면 판사들의 '조급한' 총선 출마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현직 판사들의 잇따른 총선행을 두고 정욱도 대전지법 홍성지원 부장판사가 "법관의 정치성은 언제나 악덕"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것도 판사직의 무게를 강조한 말일 것이다.

판사들의 정치권행은 목적과 경위, 사직 시기 등이 각기 달라 하나의 잣대로 일반화해 평가하기는 힘들다. 또 대부분 사례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라고 폄훼할 수도 없다. 하지만 본인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신분을 달리해 정치권에 발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남아 있는 판사들과 법원 조직에 상당한 부담을 안긴다. 특히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우려스럽다. 언론인의 정치권 직행이 그가 몸담았던 언론사에 부담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법부는 권력 견제와 인권 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다. 사퇴 후 곧바로 정치판에 뛰어드는 판사들이 내린 판결이 엄정했다고 생각하는 재판 당사자와 국민이 얼마나 될까. 사법농단을 비판하고 법원 개혁을 외치던 판사들이라고 해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원은 사법농단 사태의 중심에 권력과의 유착이 있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개혁은 제도적 장치 마련 못지않게 구성원의 의지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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